5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본 북한 리스크 … 군부가 걱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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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19일.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2009년 7월 만든 보고서를 다시 꺼내들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되던 당시 ‘만약’에 대비해 작성한 내부 보고서다. 여기엔 김정일의 후계자와 당 실세가 권력을 장악하는 경우, 군부 주도의 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서는 경우, 권력 공백 속에 급변사태가 벌어지는 경우 등 세 가지 시나리오가 담겨 있다.

보고서를 검토한 김 회장은 20일 “과거 예상했던 것에 비해 주가·원화가치·채권값 모두 낙폭이 적었다”고 말했다. “당시엔 세계 금융위기에 김 위원장의 유고가 겹칠 경우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질 가능성까지 염두에 뒀지만, 현재는 그럴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아직까진 걱정이 기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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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얘기도 했다. 김 회장은 “현재로선 어떤 것도 예측하기 어렵다”며 “2~3개월 정도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일 걱정되는 변수론 북한 군부가 어떻게 나올 것이냐를 꼽았다. “28일 장례식 이후 김정은의 권력 승계가 순조롭게 이뤄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우리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낙관적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김 회장은 “이번 일을 통해 북한도 기존 태도를 바꿀 계기가 생길 수 있지 않겠느냐”며 “북한이 핵문제를 어느 정도 유보해 명분을 주면 막혀 있던 남북간 경제 교류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의 해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 회장은 “채권 쪽을 가장 우려했는데 생각만큼 큰 영향이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외국계 자금의 이탈에 대해선 “유럽 재정위기로 그들의 자금사정이 나빠졌기 때문이지, 이번 일에 따른 움직임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일부 투기세력이 이번 일을 빌미로 이용할지는 모르겠지만 걱정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도 “경제 문제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후계자가 아예 정해지지 않았을 때와 같은 혼란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다만 단기적으로 북한 체제가 흔들릴 경우 도발해 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고 내다봤다. 산은금융지주는 앞으로 금융시장의 상황에 따라 요주의(비상경영협의회)·준위기(위기관리협의회)·위기(위기관리위원회) 세 단계로 나눠 대응할 방침이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비슷한 시각이다. 어 회장은 “단기적으로 북한 리스크가 글로벌 신용평가회사들의 한국 등급 산정에 영향을 미치고 한국 경제의 장점을 가리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해외 자금 조달 등에서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 회장은 그러나 “미국이 승계를 인정하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어 긴장이 높아지는 극단적 상황에 이르진 않을 것”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새로운 모멘텀이 있고,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경제에 큰 영향은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때일수록 국민과 정부가 기업을 응원해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

 이팔성 회장은 “북한 사태로 경제 자체가 영향받을 일은 없고, 북한이 중국이 희망하는 대로 ‘중국식 개방’을 택하면 오히려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다만 “최선의 결과를 기대하되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내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지전 등 강경수단을 무릅쓸 경우 경제에 엄청난 타격이 올 수 있는 만큼 북한 체제가 안정될 때까지 외환위기와 리먼 사태 당시를 뛰어넘는 대비태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19일과 20일 당초 예정된 일정을 그대로 소화했다. 다른 지주사들이 소집한 긴급 임원회의도 열지 않았다. “북한 변수가 당장 경제를 뒤흔들 변수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긴 했지만 권력 승계가 무난하게 이뤄지면 경제 펀더멘털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내공도 많이 강화된 만큼 충격을 소화할 수 있는 저력과 역량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본다”는 이유에서다. 한 회장은 그러나 “유럽 위기 이후에 국내 금융기관들이 외화유동성 관리를 강화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인해 그쪽에 한층 더 신경쓰면서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나현철·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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