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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들 리모델링 바람

중앙일보

입력

벤처기업 불야성 시대는 이제 옛말이 됐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벤처기업들이 돈 되는 수익모델을 찾는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가고 있다. 비용절감을 위해 무차별 감원을 하는가 하면,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광고비를 줄이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가 한창이다. 머지않아 ‘e실업자’가 등장하리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바다 건너 미국 상황도 마찬가지. 무료배달을 줄이고 수익사업을 벌여 ‘실탄’을 확보하는 등 생존전략짜기에 부심하고 있다. 벤처기업들의 위기극복을 위한 몸부림의 현장과 아울러 벤처기업의 리모델링 성공조건을 집중 점검한다.

[지금은 ‘선택’ 과 ‘집중’만이 살길이다]
돈 되는 수익모델 찾기가 관건… M&A냐 홀로서기냐 선택의 갈림길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를 운영중인 K씨. 지난해 10월 사업을 시작한 이래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돈만 까먹고 있던 K씨는 최근 한 벤처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얻어 오프라인의 헤드헌터와 사업을 연계하는 방법을 모색중이다.

K씨는 “‘인터넷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생각만으로 사업을 근근이 끌어왔지만 더이상의 고집은 자멸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진작 사업모델을 바꾸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자본금 2억원 규모로 소비자 커뮤니티 사이트를 운영중인 C씨는 최근 회사를 팔았으면 좋겠다고 모 벤처컨설팅 업체에 도움을 청했다. 사업 초기 7명이던 직원들도 다 내보내고 웹마스터 한 명만을 데리고 사업을 꾸려오던 그는 “사업을 어서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질 않아 걱정”이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커뮤니티 사이트로 유명한 중견 벤처기업 N사. 이 회사는 최근 사람을 도리어 더 뽑았다. 회사가 잘 돼서가 아니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기술인력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N사는 그간의 커뮤니티 서비스로는 도저히 수익이 날 수 없음을 직시, 홈페이지 제작, e메일 서비스 등과 관련된 솔루션을 라이선스로 판매하는 사업에 손을 댈 참이다. 또한 웹호스팅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한때 ‘신경제의 첨병’으로 주목받던 벤처기업들은 위기론이 날로 확산되고 투자자들의 발길이 끊기자 변신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서울 강남의 비싼 사무실을 떠나 강북 지역으로 사무실을 옮기기도 하고, 불필요한 인력들을 내보내고 사업부서를 통폐합하는 등 구조개선 작업에 분주하다.

IMF위기 직후 대기업 등에서 실시된 구조조정이나 다운사이징 등의 ‘허리띠 졸라매기’가 이제 벤처기업들 사이에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모델 찾기에 1차적으로 실패한 만큼 수익모델을 변형하는 경우가 많아 ‘리모델링(remod- eling)’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변화의 몸부림들을 시도하고 있다.

리모델링에 돌입한 벤처기업들이 가장 먼저 손을 대는 것은 기업운영의 효율성 문제. 감원이나 사업조직 개편, 그리고 과다비용이 지출되는 영역을 줄여가는 일종의 ‘감량경영’을 통한 ‘군살빼기’전략인 것이다.

인터넷 교육업체인 코네스는 최근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체 직원 1백30명 가운데 23%인 30명을 감원했다. 또한 기존의 6개 부서를 통합, 인터넷과 교육부문으로 재편하는 등 비효율적인 조직 구조의 개편에 돌입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광고비 등 마케팅 비용을 축소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광고대행사 K기획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 기업들의 경우 계획이 잡혀 있던 광고 물량을 갑자기 취소하거나 광고비 지급 어음의 기한을 늦추는 등 계약 조건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사례가 많아 광고대행사들 중에는 아예 인터넷 기업들의 광고를 기피하는 곳마저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벤처기업들의 리모델링이 벤처 자본시장 위축 등 외부요인에 의해 촉발된 것인 만큼 단순히 감원이나 비용절감을 통해 사업을 지속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한양대 경영학과의 한정화 교수는 “사업을 초기에 공격적인 마케팅과 집중적인 연구개발비 투자로 차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 벤처기업의 속성”이라며 “비용절감만을 고집하다 사업의 핵심역량까지 축소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벤처기업으로 몰려든 우수 인력들이 일시에 대거 이탈할 경우 ‘e실업자’ 문제까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미 벤처기업의 미래에 대해 회의를 품고 벤처기업을 자진해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닷컴의 몰락과 벤처기업 전반의 위기로 이들 업종에서 일하던 인력의 40%가 실업자로 전락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정확한 사업내용 再분석부터]

비용절감 등 긴축경영과 아울러 사업의 기본적인 창의성을 제고한다는 차원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수익모델을 전환하는 벤처기업들도 늘고 있다.

포장이사 역경매 사이트, 게임사이트 그리고 커뮤니티 사이트를 운영하던 클릭나우는 최근 게임사이트의 운영을 포기하고 포장이사 알선 사이트인 이사몰에 핵심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한글과컴퓨터는 온라인 오피스웨어인 넷오피스를 유료화해 수익모델 개선에 나섰다.

새롬기술은 동영상광고 솔루션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에 부심하고 있으며, 인츠닷컴은 최근 새 건물을 사고 서버 호스팅 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의 근본적인 사업전략 수정과 긴축경영을 통해 수익구조를 개선한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대표적인 벤처기업인 애플사를 들 수 있다. IBM 호환기종의 출현으로 어려움을 겪던 애플사는 스티브잡스를 재영입해 변신을 꾀했다. 스티브잡스는 감원과 비용 절감 노력 뿐만 아니라 아이맥 컴퓨터를 개발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굳혔다.

연세대 경영학과의 정승화 교수는 “기업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기존의 자산을 재활용해 제2, 제3의 타깃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것이 단지 자금의 유동성을 확보해 생명을 연장하는데 그쳐서는 곤란하다”며 “위기를 기회로 삼아 근본적인 대수술을 하지 않으면 위기는 또다시 올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또한 리모델링에 나서기 전에 자신의 사업에 대한 정확한 재분석(redefinition)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벤처컨설팅 회사인 벤처포트의 한상기 박사는 “벤처기업가들이 기존의 수익모델을 재분석하기보다는 무조건 새로운 것에만 매달리려는 습성을 보인다”며 “자신의 사업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말과 올해 초 펀딩을 무계획적으로 받아 지분구조가 엉망인 회사도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덕분에 주주들의 이해 관계가 얽혀 수익구조 개선 작업이 신속하게 진행되기 힘든 상황인 회사도 많다는 것이다.

[M&A문제 함께 고려해야]

리모델링에 돌입한 벤처기업들이 수익모델 만들기에만 집착할 경우 또다른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단순히 수익모델을 위한 수익모델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소형 인터넷 기업들의 경우 리모델링은 M&A문제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중대형 벤처나 대기업에 편입되지 않고서 독자생존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시점에 봉착해 있기 때문이다.

벤처컨설팅회사인 비아이뱅크의 하공명 부사장은 “순수 닷컴기업들은 대기업 등 항공모함에 편입될 것인지 홀로 서기를 통해 망망대해를 스스로 헤쳐나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며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시간과 자본을 어떤 방향으로 집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리모델링에 앞서 벤처기업가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인 자금시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다소 기형적으로 형성된 국내 자본시장, 특히 벤처캐피털 시장에 대한 분명한 이해 없이 사업을 시작해 큰 코 다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양대 한정화 교수는 “국내 벤처캐피털 시장은 그동안 정도를 벗어나 있었다”며 “합리성보다는 부동자금에 이리저리 쏠려다니며 비정상적인 의사결정을 해온 벤처기업가들은 이 기회에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벤처기업들 사이에는 ‘이제는 R2R시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동안 벤처기업들이 코스닥 열기에 편승해 ‘무조건 사업시작,기업공개(IPO)부터 먼저’라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여온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돌아가야 할(Return to Rationality) 때’라는 자성(自省)의 목소리인 셈이다.

벤처기업 리모델링의 출발점은 바로 ‘합리성으로의 회귀’라는 것에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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