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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과학은 사람을 신에서 멀어지게 하지만 더 많은 과학은 신께 돌아가게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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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종교란 무엇이며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폐암으로 타계하기 한 달 전인 1987년 10월, 가톨릭 신부에게 던졌다는 24개 항의 질문이 눈길을 끈다. 전속 필경사가 대필한 A4용지 5장 분량의 질문서에는 삶과 죽음, 인간과 신, 과학과 종교에 관한 본질적 질문들이 녹아 있다. 지난 주말 중앙일보(12월 17일자)에는 이 질문들과 함께 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가 24년 만에 내놓은 답변이 나란히 실렸다.

 질문과 대답을 비교해 가며 꼼꼼히 읽은 독자들이 많았을 것 같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도 죽음 앞에서는 결국 나약한 인간으로서 실존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고민했다는 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회장의 질문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봤음 직한 존재론적 고민을 대변하고 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주의 근원과 현재, 미래를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광대무변(廣大無邊)의 우주 속에서 인간 존재의 왜소함을 생각하면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과 우주의 근원적 섭리에 관한 성찰과 고민은 신과 종교의 문제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이 회장이 제기한 질문은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누구도 정답을 제시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현대물리학이 말하는 11차원의 우주를 알 수 없는 3차원적 인간의 한계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차 신부는 성직자로서 할 수 있는 답변의 한 가지 사례를 제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

 차 신부는 과학과 종교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고 말한다. 1916년 미 과학자의 40%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대답했는데 81년이 지난 97년 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사이 현대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신의 존재를 믿는 과학자의 비율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차 신부는 이런 반문과 함께 “약간의 과학은 사람을 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만 더 많은 과학은 인간을 다시 신에게 돌아가게 한다”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세계적 물리학자 중에는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무신론이나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지지하는 학자들도 여전히 많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빅뱅 재현 실험에 참가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신의 입자’로 알려진 힉스 입자 발견에 근접함으로써 우주 탄생의 비밀에 한층 다가서게 됐다고 한다. 인간과 우주의 섭리는 과학의 영역인가 신의 영역인가. 이 회장은 이제 그 답을 찾았을까.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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