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 사로잡은 지중해 태양의 선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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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호 33면

1 열매가 다 익은 올리브 나무. 사진 AIFO 제공 2 올리브 오일 소믈리에 과정 중 시음 장면. 사진 AIFO 제공

세계5대 건강식품, 올리브
올리브 오일은 세계 5대 건강식품의 하나다. 나머지는 불가리아의 요구르트, 일본의 콩제품, 인도의 콩 렌틸과 한국의 김치다. 올리브 오일엔 페놀과 토코페놀 같은 항산화 물질이 들어있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기 때문에 동맥경화와 심장병을 예방한다. 항암 효과는 물론 노화 방지와 피부에도 좋다. 그래서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올리브 오일을 온몸에 바르고 살았다고 한다. 올리브 오일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한국에서도 최근에는 소비량이 부쩍 늘고 있다.
올리브 하면 사람들은 이탈리아를 떠올린다. 이탈리아에선 연 평균 약 65만t의 올리브 오일이 생산된다. 국민 1인당 사용량은 약 12㎏인데 수요를 채울 수 없어 올리브 오일을 수입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올리브 오일을 많이 소비하는 국민은 그리스인이다. 이 나라에선 1년에 20만t의 올리브 오일이 생산되는데 그리스 국민 1인당 20㎏을 쓴다.

이탈리아의 자존심, 올리브의 모든 것

올리브 나무는 햇빛이 뜨거운 곳에서 자란다. 이탈리아 북부보다는 중부의 토스카나주부터 시칠리아 섬, 풀리아 주, 스페인, 그리스 등 남쪽 지방에 올리브 농장이 많다. 한여름의 태양을 잔뜩 머금은 올리브를 10월과 11월 사이에 수확한다. 올리브 오일의 맛은 뭐가 결정할까. 포도주와 비슷하다. 토양, 그해의 기후,열매의 숙성 정도, 수확과 보관 방법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토양과 기후야 어쩔수 없다고 해도 따는 방법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손으로 따는 게 시간은 많이 걸려도 최고다. 아니면 잘 휘어지는 부드러운 나뭇가지로 훑어 열매를 땅에 떨어뜨려 줍기도 한다. 이렇게 딴 열매를 플라스틱으로 만든 통풍이 잘 되는 바구니에 담아 시원한 곳에 뒀다가 수확한 뒤 24시간 안에 기름을 짜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짜는 기술이다. 최상급인 엑스트라 버진(extra-virgin) 올리브 오일과 일반 오일의 차이도 여기서 생긴다.

국제 올리브오일 협회(IOOC-International Olive Oil Council)에는 최상급 올리브 오일에 대한 기준이 제시돼 있다. ‘엑스트라 버진’이라는 명칭을 붙이려면 생올리브 열매를 어떤 다른 화학적인 처리 없이 물리적 방법으로 짜내야 하는데 산도가 0.8% 미만이어야 한다. 100㎏의 올리브를 짜면 적게는 8~9㎏에서 많게는 22~28㎏ 정도를 얻을 수 있다. 산도가 0.8~2%까지인 것은 그냥 ‘버진’이라고 부른다. 산도가 2%를 넘으면 식용으로 쓸 수 없다.

3 네 종류의 올리브 오일 색상 비교. 4 올리브 골라내기. 사진 안젤라 콘실리오 제공 5 갓 짠 올리브 즙. 사진 안젤라 콘실리오 제공 6 농장을 운영하는 크레쉬만노 사장.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세리눈테(Selinunte)에 있는 그리스 유적지에는 기원전 약 500년 전에 올리브 오일을 짜내기 위해 가장자리에 둥근 홈을 파놓은 맷돌 같은 게 있다. 이 유적지 바로 옆에는 올리브 오일 제조업체인 안젤라 콘실리오(Angela Consiglio)의 올리브 농장이 있다. 이탈리아에는 오르치올로 도로, 솔 도로, 레온 도로, 레감비엔테, 에르콜레 올리바리오 등 다양한 올리브오일 콩쿠르가 있는데 이 회사는 90년대부터 매년 상을 받아왔다. 이들이 자랑하는 테누타 로케타(Tenuta Rocchetta)는 밀라노에 있는 투 스타 미슐랭 레스토랑 ‘아이모와 나디아(Aimo e Nadia)’가 선택한 최상의 올리브 오일이다.

7 땅에 심어놓은 습도측정기. 8 올리브 수확용 그물. 사진 이 파브리 제공 9 나무에서 딴 올리브. 사진 안젤라 콘실리오 제공

안젤라 콘실리오 농장에는 약 1만 그루의 올리브 나무와 포도가 있다. 농장 주인들은 대대로 자식이 생길 때마다 300그루씩 새 올리브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현재 이 농장에는 300년 이상 된 올리브 나무가 약 500그루, 그리고 400년과 500년이 넘은 나무도 한 그루씩 있다. 농장 사장인 피에르루이지 크레쉬만노(Pierluigi Crescimanno)가 나에게 농장 구석구석을 보여줬다. 운좋게도 내가 간 날이 시칠리아 팔레르모 대학 연구원들이 농장을 방문하는 날과 겹쳤다.

대학 연구팀은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기계를 사용해 땅의 수분 함유량, 나무의 수분 흡수력, 기후 변화 등을 일주일에 한 번씩 측정한다고 했다. 땅과 올리브 나무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 분석하는 그런 노력을 통해 기상 변화에 상관없이 매년 품질이 좋은 올리브 열매를 따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잡지에 수시로 보고되기 때문에 다른 농장들도 도움을 받는다.

이 농장에 있는 모든 올리브 나무들은 허리께에 솜 같은 인조 섬유를 두르고 있었다. 크레쉬만노는 “땅에서 기어올라오는 곤충들이 못 올라가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지 사이사이에는 날아다니는 벌레들을 잡는 끈끈이 판이 매달려 있었다. 겉보기에 이런 방식은 너무 구식같아 보였다. 하지만 효과는 매우 좋아 이 덕분에 농약을 거의 치지 않고도 유기농 올리브를 수확할 수 있다고 크레쉬만노가 설명했다.

올리브 오일도 소믈리에 있다
포도주 감별사를 소믈리에라고 부른다. 하지만 올리브오일 소믈리에도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탈리아에는 올리브 오일 제조업자들의 모임인 아이포(AIFO ·Associazione Italiana Frantoiani Oleari) 협회가 있다. 지난 10월 밀라노에서 열린 ‘투토 푸드(Tutto Food)’라는 음식 박람회에 갔을 때 이 협회가 마련한 올리브 오일 시음 코너에 가봤다. 공짜였다. 자리에 앉자 각각 다른 오일이 담긴 네 개의 잔이 배달됐다. 항아리 모양인 잔의 색깔은 진한 청색이나 검정색이다. 올리브 오일의 색깔과 투명도를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시음 방법은 포도주와 비슷하다. 오일이 든 잔을 손으로 몇 초간 잡아 따뜻하게 하고 빙글빙글 돌린 후 향을 맡고 혀 밑에 오일을 살짝 머금었다가 입술을 좌우로 납작하게 살짝 벌리며 후루룩 소리가 나도록 오일을 입안 전체에 골고루 퍼뜨리는 것이다. 어떤 오일은 혀 끝과 양 옆에서 먼저 토마토 맛과 허브향을 느낄 수 있었고 가장 나중에 혀 뒷부분에서 톡 쏘는 매운 맛이 느껴졌다. 과일맛이나 허브향이 나는 것도 있지만 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입에 머금은 올리브 오일은 삼켜도 되고 뱉어도 된다. 하지만 다음 순서의 오일을 맛보기 전 사과를 씹는다. 입안에 남은 오일의 맛과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어떤 오일에서는 곰팡이나 금속맛 등 좋지 않은 냄새가 나기도 했다. 확실히 차이가 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음을 한 뒤 느껴지는 맛과 향을 준비된 표에 적어 냈더니 평가가 나왔는데 다행히도 “미각이 괜찮다”는 거였다.

현장에서 올리브 오일 제작사인 아그리조이아 회사의 안드레아 칸토레(Andrea Cantore·사진)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아이포(AIFO)는 어떤 협회인가?
“올리브 오일 제조업자의 보호와 방어를 위해 1996년 탄생한 협회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체인의 중심축이다. 아이포는 전문가와 경험자들의 도움을 받아 회원 기업들에게 국가와 유럽 연합 (EU) 차원의 일관적인 보호 및 지원을 한다.”

-올리브 나무를 기르기만 하면 누구나 협회에 가입이 가능한가.
“올리브 농장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고 직접 오일을 짜는 방앗간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올리브의 수확이나 올리브 오일 제조 과정이 협회에서 정한 기준에 맞아야 하고 전과 기록이 없어야 한다.”

-무슨 활동을 하는가.
“협회 회원들은 음식 박람회에 부스를 갖고 참여해 바이어들이나 소비자들에게 각 지방에서 나는 올리브 오일을 소개하고 시음할 기회를 제공한다. 방문객들은 시칠리아 주, 풀리아 주, 토스카나 주, 라치오 주 등 이탈리아 각 주에서 생산된 서로 다른 맛의 올리브 오일을 시음할 수 있다. 협회 회원들이 제공하는 진짜 이탈리아 올리브 오일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이탈리아 수퍼에서 파는 올리브 오일은 모두 믿을 만한 이탈리아 올리브 오일인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수퍼에서 파는 올리브오일 브랜드들은 직접 짜지 않고 좋은 품질이든 나쁜 품질이든 이미 짠 올리브 오일을 이탈리아 다른 지방이나 혹은 다른 나라에서 구입해 자신들의 병에 담아 판매하는 회사들이다. 이들은 이탈리아 올리브 오일이 세계 최고라는 유명세를 십분 이용해 대량 생산을 하지만 실제로 최고의 품질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종종 문제가 생기는데 이때 협회원들이 모여 스스로 보호할 방법을 물색하기도 한다.”

-올리브 오일 소믈리에 코스가 있다던데.
“올리브오일 소믈리에 코스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협회, 단체, 개인 등의 신청에 의해 언제 어디서든 만들 수 있다. 프로모터, 즉 코스를 만들 사람이 결정되면 그걸 만들 해당 주의 농림수산부에 신청한다. 신청을 위해선 정부에서 인정한 올리브 오일의 권위자 카포 패널(Capo panel) 중 한 명과 강사 리스트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카포 패널은 코스를 책임지고 수료증에 서명할 사람으로 카포 패널이 없으면 코스의 허가가 나지 않는다. 실제 강의는 강사들이 한다. 주정부는 유럽공동체와 주정부가 정한 규정에 따라 코스가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불시에 검사관을 보낼 수 있다.”

-소믈리에 학생 수는 얼마나 되나.
“15명 이상 30명 이하면 새 코스를 만들 수 있다. 15명 미만이면 수강료 등에 문제가 있고 30명 이상이면 혼잡해서 수업을 하기 힘들다. 외국인 학생들일 경우 통역에 사용되는 시간 때문에 코스가 연장될 수도 있다.”

-코스는 얼마 동안 어떻게 진행되나.
“코스는 36시간보다 짧아서는 안 되고 약 일주일 동안 매일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36시간 동안 학생들은 올리브 오일 시음에 대한 기본 개념에 대해 배운다. 특히 올리브 오일의 긍정적·부정적 속성, 전문용어, 결함과 장점 등에 대해 배운다. 코스는 일주일 안에 끝내는 것이 가장 좋다. 더 길어지면 지루해지고 강사들도 다른 곳에 강의를 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36시간을 넘어갈 경우에는 일주일에 3번씩 2주 동안 할 수도 있다.”

-코스를 마치면 모든 참가자들이 자격증을 받나.
“일단 출석률이 중요하다. 36시간의 코스가 끝나면 학생들은 시험을 본다. 시험은 구두시험과 실기로 나뉘는데 이 시험을 통과하면 주에서 인정하는 올리브오일 소믈리에 국가자격증을 받는다. 한 번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바로 전문가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자격증을 딴 사람들은 적어도 20번 이상 의무적으로 시음 코스에 참여해 연습을 해야 한다. 매 수업때마다 적어도 4종류의 올리브오일을 시음하고 20회의 시음코스를 완전히 마친 후에야 올리브유 시음가 리스트에 올라갈 수 있다. 한번 자격증을 따면 전 세계는 어떤지 몰라도 전 유럽에서 올리브오일 소믈리에로 활동할 수 있다.”

-코스에는 어떤 올리브오일이 사용되는가.
“코스에 사용될 올리브오일은 ‘카포 패널’이 준비한다. 학생들은 먼저 올리브오일의 결함과 장점을 배우는데 그 중에서도 4개의 결함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카포 패널은 자신의 경험, 테크닉에 바탕을 두고 좋은 올리브오일은 물론 기본 결함이나 과도한 결함이 있는 올리브오일을 골고루 준비해야 한다.”

-카포 패널이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치나.
“더 높은 레벨의 코스를 들어야 한다. 카포 패널은 코스가 진행되는 동안 청결을 유지해야 하고 병에 걸려 있어도 안 되고 향수를 뿌려도 안 되는 등 여러 규칙을 지켜야 한다. 카포 패널 코스를 듣기 위해 호주, 일본, 미국에서도 사람들이 온다. 이 사람들은 현재 자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그걸 보면 자격증이 그곳에서도 통용되는 것 같다.”

-이탈리아의 카포 패널과 강사들이 다른 나라로 가서 코스를 진행할 수 있나.
“그렇다. 하지만 코스를 만들기 전에 그 나라 정부의 식품위생법을 알아야 한다.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면 강사와 카포 패널은 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강사진은 2~3명의 카포 패널, 화학자, 분석가 등으로 이루어진다. 강사가 많을수록 수강료가 올라간다. 외국에서 코스를 하더라도 이탈리아에서와 똑같은 자격증이 발급된다. 물론 이탈리아에 와서 올리브 농장을 보고 오일을 만드는 공장을 견학하고 막 짠 오일을 시식하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김성희씨는 밀라노를 무대로 활약 중인 보석디자 이너다. 유럽을 돌며 공연과 전시를 보는 게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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