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장관들 영입, 나도 파워 벤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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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이 국가경제를 이끄는 시대

경륜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파워 벤처가 되고자 하는 벤처기업들이 전직 거물급 장관들의 영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친 전직 장관들이 줄줄이 벤처 또는 중소기업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벤처기업들 또한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나라 경제와 재계를 좌지우지했던 경륜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직 관계 거물들을 영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올들어 벤처기업의 사장이나 회장으로 취임한 전직 장관급 경제계 인사들만도 4명이나 된다. 그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나웅배 전 재경원장관 겸 부총리 등이 그들이다.

벤처 행의 첫 테이프를 장식한 것은 배순훈 전 정통부 장관. 지난 3월 리눅스 전문회사인 리눅스원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배 전 장관은 “지금은 벤처기업이 국가경제를 이끌고 나가는 시대”라며 “한국 경제의 초석을 튼튼히 하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벤처를 돕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리눅스원 회장으로 취임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 전 장관은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해 경영 상황을 체크하고 기술자문과 대외문제 등의 경영자문을 맡고 있다. 리눅스원은 지난 해 9월 팝아트컴퓨터, 한국리눅스비즈니스, 리눅스시스템 3개사가 합병해 설립됐다. 이 회사는 리눅스 운영체제 ‘알짜리눅스’를 개발했고 리눅스용 서버와 대용량 솔루션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규성 전 재경부장관도 4월 지문인증 휴대폰을 개발해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벤처기업인 패스21의 공동회장으로 초빙돼 대외업무와 경영자문을 맡고 있다. 40여 년 정통 재무관료로 국가에 봉사해온 이 전 재경부 장관은 패스21의 회장직을 수락하면서 ‘국내 벤처기업의 세계화’를 우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그동안 국가 정책수립과 집행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벤처 현장에 직접 참여해 국내 벤처기업의 세계화에 밑거름이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회장직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또한 “벤처기업의 경쟁력은 기술력과 비즈니스 능력을 얼마나 제대로 갖췄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갓 꽃을 피우기 시작한 벤처산업의 발전에 조그마한 주춧돌이 될까 한다”는 포부도 밝혔다. 지난 해 5월 재경부 장관을 끝으로 공직에 물러나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초빙교수로 일해 왔던 이 전 장관은 KAIST에서 강의도 맡으면서 패스21의 비상근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도 지난 달 그룹웨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이자 코스닥 등록업체인 핸디소프트 고문으로 취임했다. 핸디소프트 측은 “강 전 장관은 비상근 고문으로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전반적인 자문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 전 장관은 핸디소프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출근해 전반적인 경영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70년대 고속 성장기를 이끈 주역인 나웅배 전 재경원 장관 겸 부총리도 아스팔트 믹싱플랜트 및 콘크리트 플랜트 전문기업으로 코스닥시장에 등록된 벤처기업인 스페코에 고문으로 취임했다. 나 전 부총리는 스페코와 한라중공업 플랜트사업에서 스페코 계열사로 흡수된 한라스페코 양사의 고문을 맡아 대북 사회간접자본(SOC)사업과 해외지사 설립 등에 경영자문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거물급 인사들의 벤처 행이 성공적이냐 실패작이냐는 판단은 쉽지 않다. 벤처기업들은 이들이 현직에 재직하면서 쌓아온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 등을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핸디소프트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경제 거물을 영입함으로써 시야가 넓어지고 정부 관계가 원활해질 수 있어 벤처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륜과 네트워크를 단기간에 검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편, 전직 경제 인사의 벤처 행이 대세임을 인정하면서도 결국은 이들 인사에 대한 전직 예우 관행을 이용하기 위한 일종의 로비가 아니겠느냐는 비판적인 지적도 있다. 거물급 인사를 영입하는 벤처기업들도 대부분 대(對)정부 수주나 정책 결정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업 아이템이라는 점은 이를 어느 정도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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