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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금요일 새벽 4시] “종교에 대한 문답의 종결판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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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차동엽 신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중앙일보에 나왔던 기사를 책에 인용하고 싶다”는 요청이었습니다. 2년 전, 본지 주선으로 물리학계의 거두인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와 차 신부가 했던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대담기사’였습니다. 당시 대담은 놀라웠습니다. 부딪히고 충돌할 거라 여겼던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묘한 하모니’가 흘러나왔거든요. “아! 창조와 진화가 공존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 신부는 그 기사를 책에 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죠. “신부님, 무슨 책인데요?”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천주교에 던졌던 종교적 질문에 답하는 책”이라고 하더군요. 그중에 ‘창조와 진화’를 묻는 항목이 있다고 했습니다. 궁금하더군요. 그래서 차 신부가 일하는 경기도 김포의 미래사목연구소로 갔습니다. 거기서 정의채 몬시뇰과 손병두 KBS 이사장도 만났습니다.

 탁자 위에는 질문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A4용지에 반듯반듯한 글씨로 적힌 24개의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지를 들여다봤습니다. 24개의 질문은 결코 만만치 않은 물음이었습니다. 누구나 가슴 밑바닥에서 던졌을 법한 물음들, 그 물음이 이병철 회장의 가슴을 통과해 나올 때의 울림은 또 달랐습니다. 정 몬시뇰이 설명을 보탰습니다. “이 질문지를 이 회장이 타계하기 한 달 전에 받았어요. 그때가 가을이었죠.” 그러니까 1987년 10월입니다. 이 회장은 11월 19일 타계했습니다. 폐암 진단을 받은 지는 2년째였습니다.

 기사를 쭉 읽고 j팀장인 이은주 선배가 소감을 말하더군요. “종교에 대한 문답의 종결판이네.” 이 회장이 던졌던 물음이 예사롭지 않다는 말이겠죠. 24년 만에 눈을 뜬 질문지, 우리는 그 앞에서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 백성호

◆지난 월요일 밤이었습니다. 퇴근 뒤 집에 갔더니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자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나 오늘 멋진 색연필 샀~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 입에선 ‘잔소리’부터 터져 나왔습니다. 색연필이 저렇게 많은데 또 샀느냐부터 시작해 아낄 줄 모르고 새로 사는 것만 좋아하면 어떡하느냐는 등 뭐 부모들의 뻔한 잔소리였습니다. 들떠 있던 아이가 아빠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잠시 침울한 사이, 저는 다시 그 색연필 세트를 봤습니다. 50가지 색이 색상에 따라 2층으로 나열된 멋진 학용품이더군요. 색채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말은 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습관적으로 잔소리는 튀어 나간 뒤였으니까요. 그 일이 있은 뒤 j를 만드는 데, 두 가지 대목이 저를 찔렀습니다. 첫째는 한국인들은 색채감각이 뛰어난데 대부분 색에 소심하다는 것(12~13면)과 둘째는 자녀에게 잔소리를 쏟아내면 자식은 자기 걱정에 부모의 걱정·불안까지 이중고를 겪는다는 것(15면)이었습니다. 아, 저는 참 나쁜 아빱니다. 뻔한 잔소리 ‘한 큐’로 자라나는 ‘새싹’의 색채에 대한 흥미까지 무시했으니까요. 윤대현 칼럼의 마지막 부분이 다시 한 번 가슴에 깊이 와 닿습니다. ‘잔소리에 대한 충동을 참아내고 내 자식, 부하 직원의 성장통을 묵묵히 지켜보며 쏟아지는 불안 소나기를 막아 주는 그런 우산이 되어 주어야 한다’. 그날 미안했다, 종원아. - 이세영

j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신문 ‘제이’ 78호

◆ j 팀장 : 이은주
◆ 취재 : 백성호 · 이도은 · 이소아 기자
◆ 사진 : 박종근 차장
◆ 편집·디자인 : 이세영 · 김호준 기자 ,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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