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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서울 학생인권조례 처리 신중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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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어제 진보시민단체 33곳이 발의한 서울 학생인권조례안이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논의됐으나 의결이 미뤄졌다. 원안 통과를 요구하는 진보단체 회원들과 이에 반대하는 보수단체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신중한 결정이다. ‘성적 지향(性的 指向)과 임신·출산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조항에 대해 의원들 간에 논란이 집중됐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동성애나 임신을 허용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이런 조항이 거부감을 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조례안이 통과되면 더 큰 문제는 내년 3월 새 학기부터 서울 지역 초·중·고교는 체벌 전면 금지, 소지품 검사 금지, 두발 자유, 휴대전화 사용 자유, 학내·외 집회 자유 등을 담은 교칙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권 실추로 걱정을 사고 있는 교실에서 학생들의 권리 주장이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전북도의회 교육위원회조차 얼마 전 “교사들의 학생 지도에 무관심을 유발하며,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인권조례안을 부결시켰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당파성(黨派性)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학생들의 인권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권 보호를 위한 일부 조항들이 교사와 학교를 자포자기하게 한다면 모든 학생에게 불행을 초래할 뿐이다. 조례가 시행된다면 어느 교사가 막 가는 아이들과 싸워가며 교실 분위기를 잡으려 하겠는가. 지금도 자기 수업만 하고 아이들이 떠들든 말든 무관심으로 대하는 교사들도 있다. 이런 교실은 이미 훈육의 기능을 상실한 집합소에 불과하다.

 그동안 서울시의회 의원들에게 붕괴 위기의 학교 현장을 찾아가 일일 교사 체험이라도 해보고 결정을 내리라고 권고해왔다. 요즘 교사들이 어떤 환경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지 직접 느껴보라는 것이었다. 광주광역시의회 교육위원회가 학생 인권뿐 아니라 교사의 교육권도 존중한다는 의미로 교권보호조례를 의결한 것도 참고할 만하다. 서울시의회 의원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