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사업장 국내 노동자 처우개선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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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근로자들이 영세 사업장에서 외국인 산업연수생보다 열악한 환경 아래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최근 외국인 산업연수생과 종업원 5명 미만 영세사업장 근로자의 근로환경을 조사.비교한 결과 국내 근로자는 외국인 산업연수생이 보장받는 최저임금과 시간외 근무수당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을 제때 못받을 경우 외국인 근로자는 밀린 임금 석달치까지 체불임금이행보험을 통해 전액 받을 수 있는데 비해 국내 근로자들은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돌려받을 수 있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국내 근로자의 체불임금 해소율은 산업연수생(72.2%)보다 17.1%포인트 낮은 54.9% 수준이다.

산업재해율도 국내 근로자가 외국인 연수생보다 높다.

근로자 1천명당 재해를 입는 근로자는 외국인 근로자가 평균 2.5명인 반면 국내 근로자는 그 5배에 가까운 11명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휴업수당을 못받고 근로시간 제한규정도 없이 일하는 영세 사업장의 국내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35%인 4백27만명(99년 말)으로 집계됐다.

한국노동연구원 박찬임 박사는 "영세 사업장은 사업자금이 달리고 수명도 짧아 근로자들이 제대로 보호받기 어렵다" 며 "정부가 근로감독을 강화하면서 이들을 보호할 법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 영세사업장 근로환경〓서울 중구 산림동 조명기구 생산업체에서 일하던 金모(31)씨는 지난 3~5월 석달치 임금을 받지 못해 관할 노동사무소를 찾아가 중재를 요청했지만 사업주는 돈이 없다며 버텼다.

체불임금을 받으려면 민사소송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金씨는 소송을 포기했다.

사업주는 체불임금의 20%를 벌금으로 내고 형사적 책임에서 벗어났다.

서울지방노동청 안진교 근로감독관은 "현실적으로 영세사업장까지 근로감독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며 "영세사업장의 경우 사업주들이 수시로 사업자등록을 바꾸기 때문에 체불관계를 조사하기가 어렵다" 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유흥업소에서 일한 근로자는 다섯달치 임금을 못받아 지난달 노동사무소에 신고했다.

그러나 사업장이 3명의 공동대표 체제이고 그들이 실제로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주장해 실제 사업주를 기소중지 처리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지난달부터 체불임금 보상제도가 실시됐지만 사업장이 도산하고 사업주의 재산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 업주가 도주할 경우 등은 여전히 체불임금을 받을 길이 막막하다.

◇ 외국인 산업연수생은 어떤가〓경남 진주 목재가공업체인(주)재영에 근무하던 인도네시아 산업연수생은 지난 4월 손가락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한 뒤 산재보험을 통해 봉합수술을 한 데 이어 5백29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그는 치료기간동안 일을 못한 대가로 휴업수당 39만원을 별도로 받았다.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은 또 근로시간 이외에 개인적인 일로 다쳤을 경우에도 최고 3천만원까지 상해보험금을 탈 수 있다.

이밖에 연장근로시간도 하루 두시간, 1주일에 1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공장 사정으로 휴업할 경우에도 휴업기간 중 하루임금(일급)을 전액 휴업수당으로 받는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이중구 상무는 "외국인 산업연수생은 퇴직금과 연월차 유급휴가만 없을 뿐 법적인 근로보호 혜택은 영세사업장의 국내 근로자보다 여건이 나은 편" 이라며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에 앞서 국내 근로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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