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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스캔들`…동성애 반대자가 아내 몰래 레즈비언에게 정자 기증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불임인 아내 몰래 9명의 여성에게 정자를 기증해 파문을 일으킨 미국 보수 정치인 빌 존슨. 동성애를 반대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자신의 정자를 받은 여성 중 한 명이 레즈비언으로 밝혀지며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사진=데일리 메일 웹사이트]

한 미국 보수 정치인이 뉴질랜드에서 불임인 아내 몰래 9명의 여성에게 정자를 기증했다. 자신의 핏줄을 갖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목표는 무난히 이룰 것 같다. 이미 3명이 그의 아기를 임신했다. 하지만 그는 사면초가 상태다. 가족과 지지자, 의학 전문가들의 비판 공세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중지들은 이번 사건을 이른바 `정자 스캔들`로 부르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건의 주인공은 지난해 미 공화당 앨라배마 주지사 경선에 나섰던 빌 존슨(52)이다. 그가 정자를 기증한 사실은 현지 일간 뉴질랜드헤럴드(NZH)의 최근 보도로 알려졌다.

존슨은 지난 2월부터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활동 중에 가족 몰래 무허가 정자 기증 사이트를 통해 여성 9명에게 정자를 기증했다. 이 중 3명은 이미 임신에 성공했다. 나머지 6명도 그의 정자로 임신 시술을 한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거나 시술을 할 예정이다.

존슨에겐 8년 전 결혼한 아내 캐시(52)가 있다. 전 남편과 이혼하고 존슨과 재혼한 캐시는 주부 미인대회인 ‘미세스 아메리카’에서 최종 후보에 올랐던 미모의 여성이다. 하지만 10년 전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아 아이를 가질 수 없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 삼남매가 있다. 자녀들은 장성했다. 지난 4월 존슨과 캐시 부부에겐 첫 손자도 생겼다.

지난해 앨라배마 주지사 경선 당시 아내 캐시(오른쪽에서 셋째)와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존슨. 캐시 왼쪽에 있는 남녀는 캐시가 전 남편과 사이에 낳은 아들과 딸이다.[사진=데일리 메일 웹사이트]

그러나 존슨이 정자를 기증할 생각을 굳힌 건 오히려 이때다. 그는 NZH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생물학적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며 “(2세를 갖고 싶은 건) 식욕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임신한 여성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들의 허락하에 자식들과도 지속적으로 만날 생각이다.

존슨은 “임신한 아이가 태어나면 아내에게 기증 사실을 말하려 했다”며 아내에게 미안함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내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도를 통해 기증 사실을 안 캐시는 충격에 빠져 있다. 그는 “배신감으로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사랑으로 충만했던 부부 생활은 깨졌다.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말했다. 예전에 남편에게 정자 기증을 제의했지만 당시엔 남편이 거부했다는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존슨은 지지자들에게도 비판받고 있다. 그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 중 한 명이 동성애자기 때문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존슨은 동성애를 강력히 반대해 왔다. 지난해 주지사 경선에선 동성 결혼 금지를 공약으로 내기까지 했다. 지지자들은 그가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레즈비언 커플에게 정자를 제공한 건 자기 모순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존슨은 기증 당시 이 여성이 동성애자인 줄 몰랐다며 해명했다. 하지만 그의 임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거부했다.

정자 기증의 적법성도 문제다. 뉴질랜드 병원에선 한 명의 기증자가 최대 4명에게만 정자를 제공할 수 있다. 기증자의 자식이 너무 많아져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근친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존슨이 비공식 사이트를 통해 비밀리에 기증을 진행하며 이를 어겼다고 지적한다. 기증 과정에서 충분한 안전 점검이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존슨의 정자 제공 방식과 임신 과정은 지금까지 베일에 쌓여 있다. 여기에 존슨이 미국에 잠시 체류했을 당시 또 다른 여성에게 정자를 기증했단 의혹도 있어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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