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그루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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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년간 백남준의 활동범위는 매우 넓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를 한마디로 '비디오 아티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의 예술적 기법·특성·관심·신념이 여기에 총체적으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그의 대표작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글로벌 그루브'다.

이 작품에는 그가 행위예술과 플럭서스 활동으로 음악·무용의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추구해 온 흔적이 강하게 배어 있다.

또한 1970년대 이후 중요한 목표인 비디오 매체를 통한 지구촌 문화교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80년대에 그가 행한 위성 아트쇼의 모든 요소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존 케이지·조셉 보이스·셜로트 무어맨·앨런 긴스버그·머스 커닝험·그리고 재미 고전무용가 이선옥 등이 등장하고, 오키나와의 전통음악과 뉴욕의 현대 대중무용이 교차되면서 잡다한 영상들이 넘쳐 흐른다.

영화의 시각에서 보면 장면변환이 빠른 몽타주, 즉 래피드 커팅이나 교차편집에 의한 영상의 배합이다.

이를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대중문화, 추상과 구상, 빠름과 느림의 대립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제목이 시사하듯, 시각적 수단을 통한 지구적 규모의 문화교류와 융합, 그리고 새로운 문화적 지평의 비전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마셜 맥루한의 '지구촌' 개념을 가시화한 작품이다.

80년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 바이 키플링' '랩 어라운드 더 월드' 등의 위성 아트 쇼도 이 작품이 업그레이드된 결과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작품으로 비디오 아트 자체가 분명히 가시화했다는 예술사적 사실이다.

70년까지만 해도 '비디오 아트'라는 말이 사용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TV 혹은 비디오가 사진의 꼴라주나 멜리에스 시절부터 유래된 영화의 특수효과 같은 영상예술로서의 표현력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단지 'TV조각' '일렉트로닉 아트' '영화의 확장' 'TV 아트' 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던 예술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재현이나 소통이 아닌, 비디오 고유의 표현력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그는 TV모니터를 처음 도입한 63년부터 브라운관의 수직동기를 고장나게 하거나, 자석으로 음극선의 방향을 왜곡시키거나, 다이오드를 반대로 끼워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내려고 고심해 왔다.

70년 일본인 전문가 아베 슈야의 협조를 얻어 신시사이저의 개발에 성공했다. 그 자신이 달마의 고행에 비유했을 만큼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이 장치는 스스로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입력된 영상을 조작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글로벌 그루브'에서 크로마 키·솔라리제이션·피드백 등의 특수효과는, 1차적 영상 변형을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분해와 재결합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시각적 소통과 교류, 혼합의 양상을 시각화한다. 백남준을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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