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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력한 20cm짜리 네모상자 컴퓨터

중앙일보

입력

나는 사람들이 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애플 컴퓨터社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최신 작품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정육면체였다. 매끈한 외곽선의 케이스 속에는 슈퍼컴퓨터 칩이 들어 있다. 이 컴퓨터의 이름은 멋진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파워 맥 G4 큐브’다. 과일이나 여자아이의 이름을 붙이던 과거의 작명 솜씨는 어디로 간 것인가. 잡스는 “겉모습이 근사하면 속의 기능도 우수하리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 컴퓨터야말로 바로 그런 케이스”라고 말했다.

뉴스위크는 애플이 19일 G4 큐브를 공식적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이기 1주 전 스티브 잡스를 만나 신제품 설명을 들었다. 잡스는 2시간 동안 달변으로 애플의 신제품들을 설명했다. 그는 우선 새로운 색상(남색·루비색·하얀색 등)의 아이맥을 소개했다. 잡스는 지난 3년간 끔찍한 ‘하키 퍽’ 마우스를 끼워 팔았던 것을 뉘우친다며 신형 광마우스(볼을 사용하지 않고 광센서를 이용)를 선보였다. 그는 전문가용 모델에서는 2개의 G4 프로세서가 동시에 작동해 처리속도가 매우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애플의 주요 고객인 포토숍 사용자들에게 희소식이 될 것이다. 그는 최신 애플 아이무비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직접 비디오를 편집하고 각종 효과를 연출했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초보자도 생일날 찍은 비디오를 ‘대부2’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 그는 이것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최대의 혁명으로 묘사했다(“이런 것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우리뿐이다. 우리가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G4 큐브를 공개할 때가 되자 잡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컴퓨터 고객이 정말로 겉모습만 보고 구입을 결정한다면(그리고 그 디자인에 따른 웃돈을 기꺼이 더 낼 의향이 있다면) 1천8백 달러짜리 큐브는 공전의 히트를 할 것이다.

그렇게 돼야 한다. 혁신적 제품을 계속 만들어 내지 못하면 애플은 존립할 수 없다. 잡스가 애플을 경영하던 지난 3년간은 승리의 기간이었지만(애플은 1996년 파산 직전 부활해 11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애플의 위를 덮고 있는 먹구름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다. 지난주 조사 전문기관 미디어 메트릭스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매킨토시 컴퓨터의 이용 가구는 지난해에 비해 줄었다. 지난주 애플의 발표에 따르면 애플의 수익은 지난 분기에 43% 증가했다. 그러나 아이맥의 판매량은 예상보다 5만 대 적었다. 잡스는 신제품들을 내놓고 있지만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매킨토시의 새 운영체제 OS X는 2001년에야 출시된다(대중용 시험판은 9월에 나올 예정이다).

잡스는 이런 불길한 징조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가 주목하는 부분은 다른 기업인들과는 다르다. 컴퓨터 업계는 대체로 인터넷 소프트웨어와 非PC 장치용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사활이 걸려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잡스는 데스크톱 컴퓨터, 특히 애플 컴퓨터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컴퓨터뿐만 아니라 운영체제까지 함께 개발하는 기업은 애플뿐이다.

지금까지 애플만큼 디자인 혁신으로 소비자의 성원을 얻은 기업은 없다. 아이맥이 성공하자(지금까지 3백70만 대가 팔렸다) 수많은 PC 제조사가 아이맥을 따라 단조로운 베이지색 컴퓨터를 화려한 디자인으로 바꾸려 했다. 델社는 모래시계 모양의 푸른색 타워형 ‘웹PC’를 생산했다. 컴팩社는 평면 모니터가 부착된 ‘프레사리오 3500’을 내놓았고, 게이트웨이社는 아이맥과 비슷하게 생긴 ‘아스트로’를 만들었다. 아스트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단종됐으며 아스트로도 위태로운 상태다(게이트웨이의 피터 애슈킨 부사장은 아스트로를 계속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9월 아스트로를 선보였던 때가 “먼 옛날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IBM·소니 등은 여전히 새로운 디자인의 컴퓨터에 집착하고 있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하다. IBM의 기업 이미지 통합을 담당하는 리 그린은 “모든 면에서 볼 때 소비자의 선택기준이 디자인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는 나름대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회사들은 조잡한 물건을 만들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이들이 잘못 생각하는 게 있다. 껍데기만 멋있으면 다 되는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잡스는 컴퓨터의 안팎을 모두 완벽하게 만들어 ‘가장 깐깐한 고객’까지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깐깐한 고객은 바로 잡스 자신이다. G4 큐브는 잡스의 욕망을 최대한 실현한 제품인 것 같다. 이 컴퓨터를 만든 것은 애플의 여러 기술자들이며 개발 과정을 이끈 사람은 애플의 디자인 전문가 조너선 아이브지만 큐브에는 잡스의 오랜 집념이 담겨 있다. 잡스는 단순미를 좋아한다(그의 집에는 수도사의 방처럼 집기가 거의 없다). 큐브의 테두리에는 눈에 거슬리는 것이 전혀 없다. 밖으로 튀어나온 단추 같은 것도 없다. 손가락을 ‘작동’ 표시에 대면 컴퓨터가 이를 감지한다. CD는 홈에 바로 꽂으면 된다. 소음 공해도 없다. 내부장치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지만 케이스 위에 나 있는 창으로 열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냉각팬이 필요 없다. 잡스는 “우리는 쓸데없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기술혁신을 이룩한다. 이 제품에 구멍을 내거나 단추를 달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고 말했다.

잡스는 그 동안 컴퓨터에 다양한 색을 입혔다. 그러나 G4 큐브의 아름다운 시각적 효과는 투명함에 있다. 본체 케이스, 수정구슬 같은 스피커, 광마우스 등 모든 것이 투명하다. 큐브 개발에 참여한 기술자들은 쉽게 긁히지 않고 내용물이 산뜻하게 보이도록 빛을 적당히 굴절하는 플라스틱 개발에 힘을 기울였다. 아이브는 “원하는 정밀도와 빛깔을 위해 그토록 힘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애플이 얼마만큼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잡스는 앞으로도 계속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컴퓨터’의 개발에 진력할 것이다. 예컨대 큐브를 뒤집으면 바로 내부 부품을 꺼낼 수 있다. 또 큐브에는 안테나가 내장돼 있어 애플의 무선 인터넷 시스템인 에어포트를 사용할 수 있다. 세라믹 자석을 이용해 에어포트용 주변기기를 큐브에 붙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고객이 2천8백 달러(1천 달러짜리 15인치 평면 모니터 포함)를 내고 큐브를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잡스는 자신있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아이맥을 사려던 사람 중 상당수가 돈을 좀더 보태(사실은 아이맥 가격의 배가 넘는다) 큐브를 살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의 신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첫 반응은 고무적이었다. 지난주 뉴욕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에서 공개된 큐브를 보려고 4천 명의 매킨토시 열성팬들이 모였다. 일부는 새벽부터 줄서 있었다(10만 명 이상이 같은 날 인터넷으로 큐브를 구경했다). 그들은 열광했다. 전문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컴퓨터로 다음 신제품이 나올 때까지 순항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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