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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술 약한 사람 술 먹이는 건 아이에게 마라톤 시키는 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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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김원곤 교수, 이화여대 보건관리학과 임민경씨, 배우 조재현씨(사진 왼쪽부터)가 건전한 음주 문화 정착을 위해 건배하고 있다. [권병준 기자]

장취불성(長醉不醒·늘 술에 취해 깨어나지 못함)의 시기가 왔다. 연말이면 의지와 상관없이 술자리가 이어진다. 부어라! 마셔라! 한국의 술 문화는 아직도 반강제적이다. 결국 부작용이 속출한다. 한국은 건강한 술 문화가 뿌리 내리기 힘든 토양일까. 이 대답에 해법을 찾기 위해 일면식도 없는 3인이 술자리를 가졌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김원곤(57) 교수, 연기파 배우 조재현(46)씨, 이화여대 보건관리학과 임민경(20)씨다. 이들은 술에 있어 창과 방패다. 김 교수와 조씨는 소문난 애주가(愛酒家)다. 김 교수가 수집한 미니어처 술은 1700여 개다. 최근 『Dr. 미니어처의 아는 만큼 맛있는 술』을 펴내기도 했다. 40대에 술을 마시기 시작한 늦깎이 주당(酒黨) 조씨는 “술은 에너지며 활력소”라고 예찬한다. 반면 임씨는 교내 절주(節酒) 동아리 ‘헤와(HEWA· Happy Ewha Without Alcohol)’의 총무다. 그는 캠퍼스 안팎에서 건전한 음주 문화를 알리고 있다. 세 사람의 술상으로 가보자.

6일 오후 5시 서울 반포동의 퓨전 한식집. 처음 만난 세 사람의 어색한 침묵은 술이 나오며 깨졌다. 이들이 선택한 주종은 국산 증류식 소주. 알코올 도수는 25도다.

 술잔이 채워지고 첫 잔을 마시는데 임민경씨가 안절부절못한다. 김 교수와 조씨 사이에 앉아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마셔야 할지 난감해 했다.

 김원곤: (웃으며) 너무 배운 대로 하지 않아도 돼요.

 조재현: 내가 (김 교수보다) 아랫사람이니까 내 쪽으로 마셔요.

 임씨가 첫 잔을 비운 조씨에게 두 손으로 술을 따랐다. 절주 동아리 회원 인증을 하듯 잔을 반만 채웠다. 조씨가 웃으며 핀잔을 준다. “너무 조금 따르는 거 같은데.” 술의 ‘친화력’ 때문일까. 세 사람의 간극이 좁혀졌다. 술이 한 잔 더 돌자 말도 술술 나왔다. 첫 화제는 임씨가 활동하는 절주 동아리였다.

 조: 무슨 활동을 해요. 술을 마시지 말자는 건가요?

 임민경: 술을 끊으라는 게 아니라 적정하게 마시자는 거예요. 과음으로 인한 학내 음주 폐해를 줄이자는 거죠. 음주 습관을 고치고 싶어 가입한 학생도 있어요.

 조: 맞아요. 대학에서 음주에 따른 사망 사고는 심각하죠.

 김: 취지가 좋네요. 그런데 적정 음주량은 어느 정도예요.

 임: 여자는 2~3잔, 남자는 3~4잔이오.

 애주가인 김 교수와 조씨가 소리 내 웃었다. 임씨가 절주 동아리의 1년간 활동 내역을 담은 소책자를 펼쳐 들었다. 김 교수와 조씨가 한참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건복지부와 대한보건협회는 대학 건전음주(절주) 동아리를 선정해 활동을 지원한다. 전국 60개 대학에 절주 동아리가 있다.

김: 미국에서 실패한 법 중 하나가 주류의 조제와 판매를 금지한 금주법(1920년)이에요. 하지만 밀주가 성행하고, 술을 안 마시던 사람까지 호기심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결국 이 법은 1933년 폐지됐죠. 건전한 음주 문화를 알리려면 설득력 있게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게 중요해요.

 한국의 술 문화는 아직도 주량(酒量)과 강압적인 권유가 지배한다. 개선의 여지가 없을까. 40대에 접어들어 애주가가 된 조재현씨가 입을 열었다.

 조: 폭탄주 50잔을 마신다며 자랑하는 분들이 있어요. 모든 것을 술로 제압하고 술로 결론 내는 것은 좀….

 김: 공감합니다. 술을 잘 마시고 못 마시는 사람의 98%는 타고나는 알코올 분해 효소가 좌우해요. 술이 약한 사람에게 술을 강요하는 것은 100m 달릴 능력밖에 없는 아이에게 마라톤을 시키는 것이에요. 위험해요.

 임: 절주 동아리에선 술을 많이 마시고 ‘꽐라’(만취된 상태)가 된 친구를 돌보는 방법도 알려요. 절대 혼자 두지 말고, 부모님께 꼭 데려다 주라는 내용이에요.

 김: ‘인 비노 베리타스(In Vino Veritas)’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술에 진리가 있다는 뜻이죠.

 세 사람은 이날 한국의 건전한 음주 문화 정착을 위한 해법을 제시했다. ‘배려’와 ‘자기 성찰’이다. 김 교수는 “술을 권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사양하면 권하지 않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또 술 때문에 직장·가정·학업에 충실하지 못하면 술을 줄여야 합니다. 자기 성찰이죠. 두 가지만 지키면 음주 부작용의 50%는 사라집니다.”

 임씨가 마지막 건배사를 외쳤다. “건전(健全)하게 술 마시세요.” 김 교수가 살을 붙였다. “적당한 술은 심혈관계통 등 건강에 좋지만 위장·간·신경계통(뇌)에 문제가 있거나 가족력이 있으면 나쁘다는 사실을 기억해요.”

정리=황운하 기자
사진=권병준 기자

취중 토크 3인의 음주 프로필

1 주량 2 즐기는 술 3 음주 횟수 4 숙취 해소법 5 술에 대한 철학 6 술자리 습관

■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김원곤 교수 1 컨디션에 따라 다름 2 모든 술 3 주 3회 4 운동 5 술을 이해하고 향을 음미하며 마시면 즐겁다 6 술만 마신다

■ 배우 조재현씨 1 소주 1병 반 2 소주, 막걸리 3 주 3회 4 수면 5 적절한 술은 에너지이자 활력소 6 동석한 사람에게 노래를 청해 듣는다

■ 이화여대 임민경씨 1 소주 3~5잔 2 막걸리 3 한 달에 2~3회 4 수분 섭취 5 술자리는 즐기되 주량은 기분 좋을 정도만 6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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