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교역 1조 달러 시대의 공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채인택
논설위원

1970년대 중반 부산·경남 지역의 전통수산식품인 ‘꼼장어 껍데기(곰장어묵의 지역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재료인 곰장어 껍질을 가공해 유사 가죽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거의 전량이 그리로 공급됐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시절 그나마 고소한 기름맛을 볼 수 있어 술안주는 물론 어린이 영양 간식으로 인기가 있었던 전통음식을 잃은 충격은 컸다. 하지만 수출을 위해서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수출은 곧 국가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불과 30여 년 만에 세계 아홉 번째로 교역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기업인과 상사원·노동자 모두의 공이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탤 공로자가 외국인 고문이다. 선진 기술과 경험, 국제 네트워크를 가진 분들이 한국 기업에 자신들의 노하우를 보태줬다. 12일 제48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1조 달러 시대 특별공로자로 금탑산업훈장을 추서받은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조선 전문가 고(故) 윌리엄 존 덩컨도 그중 한 명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 시절 기억을 되살려 “이 사람 찾아보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사실 그런 외국인 공로자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이제는 세계 최고가 된 삼성전자도 많을 때는 수백 명의 일본인 고문을 채용해 서울과 도쿄에서 일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회사 창립 멤버인 원로 기업인에게 들어보니 고문들의 가장 큰 공로는 ‘자극’이었다. 대부분 은퇴자로 풍부한 국제 시장 공략 경험이 있는 이들은 소재나 공정 분야 선진 기술은 물론 경영과 디자인 부문에 걸쳐 세계 수준이 어떤지를 알려줬다. 직원들은 여기에 자극 받아 도전정신을 길렀으며 습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TV·반도체·휴대전화 등 오늘날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부문에서 오히려 일본을 능가하는 글로벌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했다고 한다.

 나라든 기업이든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으려면 앞선 쪽의 시스템과 기술을 우선 따라 배우는 수밖에 없다. 일본도 근대화를 시작한 메이지 원년(1868년)부터 1900년까지 영국인 4353명, 프랑스인 1578명, 독일인 1223명, 미국인 1213명의 농업·의학·건설·건축·군사 분야 고문을 초청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라는 명언을 남긴 미국인 윌리엄 클라크도 그렇게 일본에 왔다. 매사추세츠 농과대학 학장이던 그는 신개척지인 홋카이도에 미국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옮긴 농대를 세웠다. 8개월간의 체류를 마치고 1877년 4월 16일 이임 당시 배웅 나온 1기생 16명에게 했던 이 말이 일본 교육계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 됐다.

 러시아를 근대화로 이끌었던 표트르 대제도 마찬가지다. 독일 군인을 데려와 포술을 가르치게 하고, 프랑스인들에게 건물을 짓게 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프랑스에서 세무 전문가를 초청해 간접세를 도입하면서 국가 재정을 확충했다. 폴란드 상인에게 교역과 국영 견직 공장을 맡겨 프랑스 제품과 경쟁하게 했다. 개신교 국가임에도 가톨릭 국가 스페인으로부터 학식 높은 예수회 수도사를 초청해 교육을 맡겼다. 폴란드의 유대인 상인들에게 무역권과 은행 사업권을 내줬다. 유럽의 변방국가이던 프로이센은 이러한 유연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강대국으로 성장해 독일 통일의 주역이 됐다.

 교역 1조 달러 시대를 맞아 새삼 안팎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배운 개방적인 사고방식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1조 달러 시대의 1등 공신일 것이다. 앞으로 차세대를 먹여 살릴 새로운 산업도 이처럼 열린 자세로 찾아야 한다. ‘답은 우리 울안에 있고 바깥은 모두 늑대 무리뿐’이라는 쇄국적인 생각을 고집하다 살림이 거덜난 사례가 우리 주변에 빤히 보이지 않는가.

채인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