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을 위한 게임은 아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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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전유물로 여겨졌던 프로게이머의 세계에 여성들이 등장해 새로운 분위기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의 종목인 〈스타크래프트〉로 경기하는 여성들의 경우 남성게이머와는 달리 여성특유의 섬세함으로 다양한 전술을 내세워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유저층은 10대에서 20대까지의 남성이 대부분이고 제작사들도 이들의 기호에 맞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그래서 게임세계에서는 남성주인공이 등장하여 스토리를 이끌어가게 되고 여성캐릭터들은 서브캐릭터로서 수명을 다하고 있다.

특히 여성과의 만남이 게임의 목표로서 존재하는 연애시뮬레이션의 경우 남성위주의 세계관은 더욱 심각하다. 이러한 게임들에서 여성들은 현실성이 제거되고 남성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하나의 아이템으로서 존재하고 있으니 여성들이 이런 게임에 다가가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툼레이더〉나 〈드라칸〉처럼 강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더라도 게임성과는 별개로 그 시선이 남성위주의 선정성에 머물러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학창시절에 밤을 새며 읽었던 순정만화나 소설을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순정만화, 소설은 모두 평범한 여자애가 부유하고 뛰어난 능력을 지녔으나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라이벌과의 경쟁에서 결국 완벽한 남성의 선택을 받아 신분상승을 이루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다. 세대가 바뀜에 따라 다소의 내용의 변화는 있더라도 결국 신데렐라의 환상에 대한 기본 골격은 거의 변화가 없으며 가장 사랑 받는 소재이기도 하다.

〈안젤리크 스페셜〉은 〈삼국지〉시리즈로 유명한 코에이에서 제작한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깔끔한 그래픽과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엄청난 인기를 얻어 드라마 CD, 캐릭터 보컬 CD, 동인지 등이 아직도 발간되고 있다. 이 게임은 평범한 소녀인 안젤리크가 라이벌 로잘리아와 여왕 자리를 두고 꽃미남 수호신 캐릭터와 함께 건설경쟁을 하는 내용으로 전형적인 순정만화를 그대로 게임으로 옮겼다. 이 게임을 제작한 코에이내의 여성만으로 이뤄진 루비팀은 이후 〈안젤리크〉시리즈 이후 〈아득한 시공 속에서〉라는 연애시뮬레이션으로 연속 성공을 했다.

일본에서의 성공과 코에이사의 인지도에 힘입어 국내에는 97년에 출시되었으나 별다른 호응 없이 잊혀져 현재 국내에서는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귀한 게임이 되고 말았다.

이 게임이 국내에서 인기를 끌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위에 언급한 대로 국내의 좁은 게임유저층 때문이다. 가정에 위치한 컴퓨터의 주이용자는 대부분 아버지 혹은 오빠, 남동생이고 여성들은 가끔 문서작업이나 통신을 하는 데에만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용으로 제작된 이 게임을 유저들이 구입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또한 모든 게임이 분명하게 남성전용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불식시킬만한 게임도 거의 없다. 한때 〈프린세스 메이커〉시리즈가 잠깐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이 게임도 플레이어가 아버지 역할이어서 여성 게이머가 감정이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특히 아버지가 입양한 딸과 결혼을 하는 엔딩을 받아들일 자신이 있었을까?)

〈안젤리크 스페셜〉은 사실 남성게이머들이 즐기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일단 캐릭터가 여왕이 되기 위해 라이벌과 경쟁하는 구도도 낯설고 특히 음성더빙까지 되어 있어 장발의 꽃미남 수호신들의 목소리를 닭살이 돋지 않는 남성은 없을 듯 싶다. 그러나 일단 게임자체는 매우 긴장감 넘치는 시뮬레이션으로 수호신과의 미묘한 감정변화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러한 바탕에 평범한 여성이 신데렐라가 되고자 하는 원형의 욕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캐릭터부터 주변인물, 게임의 목표까지 여성용 게임의 충실한 모델인 〈안젤리크 스페셜〉이 국내에서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여성을 위한 게임이 꾸준히 제작되는 환경이 조성이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 여성들이 접근하기 쉬운 게임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일부 게임이 모두 저연령층의 퍼즐게임인 것은 큰 문제가 아닐수 없다.

여성게이머가 꾸준히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남성위주로 제작된 게임들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직은 사회적으로나 정보력으로도 여성이 사회적인 약자인 것은 사실이다. 이들이 쉽게 게임에 접근할수 있도록 엄격한 성역할 구분에서 벗어나 여성취향에 맞는 귀여운 캐릭터, 다양한 아이템등을 도입하고 쉽게 즐길수 있는 게임이 많이 개발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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