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의 ‘여자는 왜’] 척 하면 삼천리… 남자 마음 읽는 초능력 그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조현 소설가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저자

세상의 모든 여자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후배 L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미 중학생 시절에 터득한 사실이다. 당시 L은 친구 누나에게 수학을 배우고 있었는데 수업 중 잠깐 딴생각을 했다. 막 사춘기가 시작된 L, 호기심에 친구 누나의 몸매를 잠깐 훑어본 거다. 정말, 맹세코, 아주 잠깐이었고 그것도 곁눈질이었지만 누나는 L의 눈빛을 바로 알아챘다. “조그만 게 벌써부터!” 그날 L은 얼굴을 붉히는 누나에게 장장 한 시간 동안 훈계를 들어야 했다. 휴, 부모님께 이르지 않은 게 다행이랄까.

 이후 L은 여자한테는 남자에게 없는 매우 민감한 촉수가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그건 도서관에 꽂혀 있는 인체해부도에는 절대로 나와 있지 않은 신체기관인 거다. 그건 남자들이 대화 중에 딴생각을 하는지, 혹은 어떤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는지 알아채는 기능을 한다. 그러니 정말 조심해야 한다. 여자들의 촉수는 눈에 보이지 않아 자칫 방심하기 쉽지만 사실은 매우 민감해 한번 걸리면 꽤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얼마 전 L은 저녁을 먹으면서 여자친구 S와 결혼식 준비에 대해 얘기하던 도중 아주 잠깐 프로야구 생각을 했다. 여자친구의 얘기가 너무 길어져서 딱 5초 동안 그날 벌어진 한국시리즈 결승전 득점 상황에 대해 생각했던 거다. 그러자 S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L이 자신과의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있단 걸 바로 알아챈 거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남자들의 머릿속을 감지하는 능력은 여자들만 특허 낸 초능력이다. 당연히 L은 새침해진 S를 달래느라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그건 그렇고 그 며칠 후 L은 웨딩드레스를 고르면서 약간 망설이는 그녀의 눈빛을 봤다. “나도 이게 맘에 드는데, 아주 조금만 신경 쓰면 입을 수 있을 거 같아!” L이 다정하게 권유하자 S가 반색한다. “그렇지? 딱 1㎏만 빼면 입을 수 있겠지?” 간혹 L도 1초 동안의 눈빛에 S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때가 있다. 가끔은 남자도 초능력을 발휘한다. 

조현 소설가·『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저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