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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자본주의, 복지체제 구출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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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전 세계가 격랑에 빠져들고 있다. 세계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니, 어디로 갈 것인가? 21세기 초엽의 자본주의는 1세기 전과 같은 세계대전, 파시즘, 대공황이라는 초대형 경(硬)착륙을 피해 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 꼭 피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몇몇 나라의 재정위기가 초래할지도 모를 세계경제 파탄은 또 얼마나 많은 세계인의 삶을 끝없는 절망과 나락으로 몰아넣을 것인가?

 이제 우리의 삶은 우리와 직접 관련이 없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경제위기가 곧바로 우리 삶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단계에 진입해 있다. 이 나라들의 위기는 유럽의 위기로, 유럽의 위기는 세계의 위기로, 그것은 다시 개별 나라와 기업과 가계와 개인들의 즉각적 불안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는 곧 시장의 세계화로 인한 세계 모든 개별적 삶들의 연동과 동시화를 의미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위기의 진앙이 선진자본주의 중심국가들이라는 점이다. 미국 금융위기와 월가 점령 시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런던 폭동과 은행 점거,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 파산위기, 유로존의 붕괴조짐…. 그동안 인류에게 발전·안정·민주·선진의 선망 대상이었던 미국, 일본, 유럽이 모두 실업·부채·적자·금융위기·빈부격차·경제침체로 혹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너무도 쉬이 시간의 관념을 잊는다. 겨우 100년 이내에 인류는 두 번의 세계전쟁, 대공황, 파시즘, 공산주의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들을 집중적으로 겪었다. 역사상 인간사회의 모순·병리현상·집단학살·잔인성이 이렇게 짧은 시기에, 이토록 대규모로 집중된 적은 없었다. 이 시기 문명화는 비극의 초거대화, 반(反)인간성의 세계화와 함께한 것이었다. 공산주의를 제외한다면 모두 자본주의 내에서 발생한 비극들이었다. 이들 극단의 비인간적인 시도와 체제의 도전을 극복하며 인류는 인권·자유·분배·경쟁·복지를 골간으로 삼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복지체제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체제경쟁에서 승리하자마자, 저 초대형 비극들이 전부 100년 이내에 있었던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냉전해체 이후 인류는 마치 오랫동안 평화로웠고 안정적이었던 것처럼 착각했다. 문제의 근원은 역사종언론을 포함한 단일표제주의와 승리주의에 있었다. 세계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밖의 도전(체제경쟁)과 안의 저항(노동운동)이 소멸하자 근본적인 자기수정 대신, 거꾸로 오만한 승리주의에 빠져들어 시장·기업·금융·경쟁·이익 만능의 유일체제를 가속화했다. 세계를 단일체제로 통일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곧 시장만능주의, 신자유주의와 동일시되었다.

 부익부 빈익빈, 강익강(强益强) 약익약(弱益弱)의 논리는 마침내 세계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을 1 대 99 사회로 만들고 말았다. 그러고는 1991년의 사회주의 붕괴 이후 정확히 20년이 경과한 오늘, 자본주의가 절대 위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밖의 도전도, 안의 저항도 부재하자 스스로 내파(內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에 돌아볼 때 사회주의와의 경쟁과 노동자들의 도전이야말로 자본주의를 개혁으로 이끌고 강화시킨 핵심요소였던 것이다.

 어떻게 넘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자유주의로부터 분리해 내야 한다. 신자유주의를 희생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구출할 것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와 함께 그것들마저 침몰시킬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특별히 민주주의를 통한 국가와 사회의 역할 회복이 절실하다. 그중에서도 민중·대중·시민… 무엇으로 표현하든 노동자·실업자·빈민·농민·청년·자영업자 등 일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도전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와 복지체제를 수정·개혁·강화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공산체제와 파시즘 등 철저히 패망한 체제는 언제나 사회의 특정 단일요소나 계급의 독점체제이거나, 유일가치를 추구한 단일표제사회였다. 그러나 단일표제사회는 결코 인간사회의 해답이 될 수 없다. 그 때문에 신자유주의 유일세계체제 역시 종식되어야 한다. 인류가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발전시켜온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와 복지체제를 구출하고, 21세기에 또 다른 반인간적 체제의 등장을 막기 위해 꼭 그리해야 한다. 만약 지금 신자유주의 철폐에 실패한다면 인류는 또 다른 가공할 반인간적 체제의 등장이라는, 오늘의 위기보다도 훨씬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땐 너무 늦다. 우린 앞선 비극으로부터 꼭 배워야 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