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CEO리스크’이례적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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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렬 HMC투자증권 연구위원은 5일 하이마트의 목표주가를 8만3000원에서 6만7000원으로 낮췄다. 이날 종가가 7만7200원이다. 투자의견으로 ‘보유’를 제시했지만 사실상 팔라는 얘기다. 그는 보고서에 “필자는 이번 기회에 경영자(또는 오너)의 자질과 덕성, 그리고 계속 기업으로 육성하려는 의지 등 정성적 평가 또한 밸류에이션(기업 가치)에 반영할 계획이다”고 썼다. 지난달 23일 불거진 하이마트의 최대주주인 유진기업과 2대 주주인 창업자 선종구 회장 간의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 잇따른 지분 매각 발표를 정면으로 꼬집은 것이다. 경영권 갈등 문제가 불거진 23일 이후 최근까지 코스피 지수는 8% 올랐는데 하이마트 주가는 12% 떨어졌다. 박 연구위원은 “최대 주주로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경영자는 기업의 명운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그렇지만 측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그간 주가 분석 대상에서 소홀히 다뤄졌다. 그런데 최근 하이마트는 물론 경영자의 행동에 따라 회사 주가가 흔들리는 사례가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SK C&C도 그런 경우다. 이 회사는 SK그룹 내 지주회사인 SK㈜ 지분을 31.8% 보유한 최대주주다. SK 지배구조상 제일 윗선에 있다. 최태원 회장은 SK C&C 지분을 통해 그룹 오너로서 계열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달 8일 주가는 전날보다 3.21% 떨어진 15만1000원을 기록했다. 닷새 전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늘었다고 발표했고, 이어 증권사들의 매수 추천이 쏟아졌는데도 주가가 맥을 못 췄다. 시장에선 이날 하락의 원인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꼽았다. 최 회장의 비자금 조성 혐의와 관련, 검찰이 SK그룹 본사 사옥을 압수수색한 게 주가에 나쁜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롯데관광개발도 비슷하다. 롯데관광개발은 10월 12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김기병 회장이 두 아들에게 735억원어치의 주식을 증여하면서 수백억원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다. 이튿날인 13일 이 회사 주가는 장중 한때 전날보다 5% 넘게 떨어지더니 그날 이후 5일까지 16% 하락했다.

 선진국의 경우 최고경영자(CEO)와 주가의 상관관계가 비교적 분명하다. CEO가 누구냐에 따라 주가가 변한다. 1997년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지난 8월 사임할 때까지 주가를 9000% 넘게 올려놓았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CEO도 다른 정보기술(IT) 업체들이 2000년 버블 붕괴로 사라져갈 때 사업 영역을 도서에서 전 부문으로 확대하면서 10달러에도 못 미치던 주가를 200달러 선으로 밀어올렸다.

국내는 좀 다르다. 주가가 CEO보다는 최대주주와 관련이 많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자리 잡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전문경영인이 주가를 끌어올린 경우도 있다. LG생활건강의 차석용 부회장이 좋은 예다. 2005년 LG생활건강 사장을 맡은 이후 5년 동안 매출은 3배, 영업이익은 5배 늘리고 주가는 15배 높였다. 27분기 연속 두 자릿수 이상 실적을 키웠다.

 경영자 리스크를 ‘저가 매수 기회’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대증권은 SK C&C에 대해 “비자금 사건이 SK C&C의 본질 가치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며 목표주가로 25만원을 제시했다. 1일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박찬구 금호석유 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이 회사 주가가 흔들렸지만, 시장 일각에선 “금호석유 오너 소환으로 주가가 급락한다면 매수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기투자를 중시하는 가치투자자들 사이에서 경영자는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언제나 경영자의 비전과 철학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경영자를 만난 경우엔 기업 내용을 자세히 보지 않고 경영자를 믿고 투자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가치투자자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역시 “아무리 성장성이 큰 기업이라도 CEO의 자질이 의심스러우면 투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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