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정책 쏟아져도 예산 빠듯 … 소방차 길 계획까지 표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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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동구 안심1동 대구축협 뒷길로 주민들이 트럭을 피해 지나가고 있다. 불이 나면 소방차도 들어오지 못하지만 예산이 없어 확장을 못하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지난달 30일 오후 2시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1동 대구축협 뒷길. 달리던 1t 트럭이 갑자기 후진한다. 맞은편에서 승용차가 들어와서다. 이곳은 동구의 옛 도심 길이지만 시골길처럼 꼬불꼬불하다. 몇 년 전에는 주택에 불이 나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커브 길을 돌 수 없었다. 소방관들이 호스를 연결해 달려가는 사이 집이 불타고 말았다.

 주민들의 원성이 극에 달하자 2년 전 길을 8m로 넓히기로 했다. 하지만 건설비(25억원)를 끝내 조달하지 못했다. 동구청의 복지예산은 2008년 전체의 51.5%에서 올해 57.3%로 늘었다. 정부가 기초노령연금·보육료 대상을 크게 늘리면서 딴 데 쓸 돈이 복지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동구청 서자원(57) 건설과장은 “주민의 생명과 재산이 걸린 문제라 시급한 사업으로 봤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복지비 등이 크게 늘면서 도로 넓히는 데 돈을 쓸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시 북구청은 이번 달 기초노령연금을 못 줄 상황에 처해 있다. 애초에 예산이 빠듯해 책정하지 못했다. 북구는 인건비 절감, 업무추진비 삭감, 가로등 격등제 등의 방법으로 재원(17억원)을 짜내고 있지만 안 되면 내년 예산을 당겨 쓰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북구는 복지에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기초단체다. 전체 예산의 64%가 복지에 쓰이며 전국 최고다. 인구 대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비율(5.4%)도 전국 최고다. 반면 변변한 생산시설이나 기업이 없어 돈이 들어올 데는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중앙정부에서 복지를 확대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정도다. 황재관 북구청장은 “국가 복지 사업비를 대다 보면 자체적인 복지 사업은 꿈도 못 꾼다”며 “저소득층 원어민 학습 지원과 급식지원 등을 하고 싶었지만 시작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지자체들이 복지예산 부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자체에 가장 부담을 주는 복지예산은 기초노령연금·영유아보육료·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 등이다. 기초노령연금·기초수급자 지원금은 지급금의 10~60%, 영유아보육료는 40~90%를 지자체가 부담한다. 노령연금이나 기초수급자 지원금은 급속한 고령화 때문에 가파르게 늘어 왔다. 여기에다 정치권의 복지 경쟁 때문에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증가하면서 지자체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특히 보육료는 정부가 하위 소득 50%만 지원하던 것을 정부가 올해 60%, 내년에 70%로 순차적으로 늘리기로 지난해 9월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며칠 뒤 대통령 주최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올해부터 70%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2005년 5739억원에서 내년에는 4조900억원으로 여덟 배가량으로 늘었고 지자체들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반면 지자체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진다. 부동산 경기 침체 때문에 지방세 수입이 예전 같지 못하다. 중앙정부에서 지자체에 위임한 52가지 복지사업(노인복지관 지원 등) 지원금은 6년째 제자리다. 그러다 보니 자체 복지 사업을 늘리거나 신설하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되레 줄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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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광역시 유성구는 국공립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 종사자의 이달치 인건비 2억4000만원 가운데 6000여만원이 부족한 상태다. 유성구 관계자는 “시에서 돈이 제때 내려오지 않으면 몇 군데 어린이집은 1월 초에 지급할 예정인데 지난해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는 수유동에 건립 중인 여성회관 겸 보육정보센터를 이달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운영비를 확보하지 못해 개관 시기(내년 5월)를 늦추기로 했다. 복지관 운영비 지원금을 10% 일괄 삭감했다.

 인건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데도 많다. 복지예산이 40%가 넘는 노원·은평·강북·중랑·도봉·관악·구로·성북 등 8개 구가 지방세 수입으로 공무원의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한다(국감 자료). 광주광역시 남구는 지난해와 올해 본예산으로 공무원 월급을 편성하지 못했다. 한 해 400억원 정도 되는데 지난해에도 결산 추경예산에 반영해 겨우 지급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이찬호·김상진·홍권삼·황선윤·김방현·신진호·유지호·박수련·박유미·최모란 기자

◆기초노령연금=소득하위 70% 노인에게 자식의 부양능력과 상관없이 월 9만1200원(부부는 14만5400원)을 지급한다. 국민연금 가입자 월평균 소득의 5%에 해당한다. 2028년까지 10%로 올리도록 돼 있다. 2008년 국민연금을 개혁할 때 도입됐다.

◆보육료=보육시설을 이용하는 0~4세 아동에게 지원한다. 하위소득 70% 가구(4인 기준 480만원)의 아동 92만 명이 대상이며 월 17만7000~39만4000원을 지급한다. 0세 아동은 어린이집에 월 36만원가량의 지원금이 별도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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