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마기 같은 효도상품까지 안 팔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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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권혁중(52)씨가 서울 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 사업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음식점을 접고 새 사업을 차린 지 불과 3개월. 한창 새 사업을 키우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할 때지만 “그저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경기 때문에 장사 안 되는 건 용빼는 재주 없더라”는 게 그의 한탄이었다.

 올 8월 서울 자양동에 의료기기 판매점 ‘피스메디컬’을 낸 권혁중(52)씨. 그가 주로 다루는 것은 안마기·보온매트·보청기·혈당계 같은 노령자 개인용 건강·의료 용구다. 고령화를 넘어 초(超)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찾는 이가 많이 생길 것으로 판단해 차린 사업이었다. 하지만 개업 초 부닥친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안마기나 보온매트 같은 것은 대표적인 ‘효도형 상품’입니다. 대체로 40대들이 연로하신 부모님 사드리는 거죠. 그런데 중년 층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니까….”

 권씨는 “손님이 와도 붕대처럼 1만원이 채 안 되는 물품이나 사가는 정도”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전자회사에 다니던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을 한 뒤 가족과 함께 미국 LA로 갔다. 교포들을 대상으로 대리운전과 각종 배달 같은 일을 해 생계를 꾸렸다. 그러다 2007년 권씨 혼자 귀국했다. 이른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때문에 미국 경기가 꺾여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선 2008년 서울 거여동과 인천 강화 두 곳에 죽집을 차렸다. 처음엔 미국에서 터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장사가 꽤 쏠쏠했다고 한다. 그러나 올 들어 손님이 확 줄었다. 권씨는 “최근 들어 빚이 늘고 있다”고 했다. 미국 가족 생활비와 현지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의 학비를 대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

 “전자회사에서 익힌 지식을 바탕으로 의료기기도 하나 개발했습니다. 추세가 있으니 국내 고령화 용품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거고요. 언젠가 해 뜰 날이 오겠지요.”

특별취재팀=권혁주·김기환·심서현·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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