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공조, 만병통치약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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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호 21면

유난히 따뜻해 입동(立冬)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가을에 머물고 있다고 착각하는 날이 많았다. 방심하고 외투 없이 나선 어느 날, 매서운 겨울 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나서야 겨울로 접어들었음을 뒤늦게 깨딛기도 했다. 주변에서 감기몸살에 시달리는 이들이 부쩍 눈에 띄는 것을 보면 계절의 변화에 둔감했던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주식시장에도 계절이 있다. 주식시장의 강세장을 뜨거운 여름이라고 한다면, 약세장은 겨울인 셈이다. 계절마다 그에 걸맞은 차림새와 생활방식이 있듯이 투자도 각 국면에 맞는 투자 원칙과 대응 방법이 있다. 따라서 주식시장이 어느 국면에 있는지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주식시장이 경기와 동행해 움직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주식시장의 계절을 판단하는 기준은 경기다.

지난달 30일 미국 연준이 유럽중앙은행(ECB)을 포함한 5개 선진국 중앙은행들과 달러 스와프 계약을 재개하고, 스와프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한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그러자 글로벌 증시가 하루에 4% 가까이 급반등했다. 코스피지수도 이에 동조하며 3.7% 올랐다. 유럽 부채 위기로 신용 경색에 시달리던 유럽 금융회사들이 달러 유동성을 확보하기 쉬워졌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국제공조 체제가 가동되기 시작됐다는 사실이 주효했다. 유럽의 문제가 자체적인 노력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자칫하면 유럽연합(EU)과 유로화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높던 터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브라질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중국 인민은행이 3년 만에 은행 지급준비율을 인하한 점도 호재로 작용했다. 선진국에 이어 신흥 국가들도 국제공조에 참가하기 시작했다는 기대감을 높인 것이다.

그러나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시작한 국제공조 분위기가 침체에 빠진 유럽 경제를 복원시키고, 나아가 세계 경제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르다. 우선 투자자 기대대로 국제 공조가 강력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유럽 재정위기의 불을 진화하기 위해서는 EU 회원국에 대한 재정 통합이 선결과제다. 같은 유로존 소속인 독일조차 EU 조약 개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 재정 통합과 각 국가의 재정에 대한 감독 권한을 확보하는 것이 선행돼야 재정 위기 국가를 적극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ECB 역시 독일과 같은 주장을 하는 상황이라 재정 통합 이전에 유럽 외부의 국가들이 먼저 나서기 쉽지 않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수정안을 유로존 국가들이 통과시키는 과정에도 상당한 진통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개별 국가 주권과 관련된 재정 통합 과정의 불협화음은 불가피해 보인다. 따라서 이번 국제공조 움직임은, 선진국들이 유럽 부채 위기의 심화가 세계 경제에 상당한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깊이 공감하고 적극적인 해결 노력을 보여준 정도로 해석된다. 즉 주식시장이 유럽 문제 때문에 급격히 붕괴되는 걸 저지한 정도이지 상승을 이끌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필자는 중국이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지급준비율을 인하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11월 제조업 구매관리지수(PMI)가 49를 기록해 2009년 2월 이후 처음으로 50을 밑돌았다고 발표했다. 50 이하면 경기침체를 뜻한다. 그러나 인민은행은 하루 전에 지준율 인하를 기습 발표했다. 중국 정부가 PMI 하락으로 인한 경착륙 우려를 진화하려고 선제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중국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상당히 높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2008년 10월, 12월 두 차례에 걸쳐 지준율을 총 2%포인트 인하한 것을 계기로 각종 경기 부양책이 가동됐다. 중국 제조업 PMI는 2008년 11월 반등해 2009년 3월에는 기준선 50을 웃돌아 경기 확장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했다. 글로벌 경기 회복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경기 침체가 짙어지던 시기에 주요국 중 처음으로 중국이 경기 확장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해석과 함께 전문가들은 2009년 3월을 글로벌 증시의 바닥 시점으로 삼았다. 이후 2년여간 추세적 상승 흐름을 탔다. 물론 중국 제조업 경기가 이제 막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신호와 함께 글로벌 경기의 둔화 과정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정책 신뢰도 면에서 높이 평가받는 중국 정부가 얼마나 경기 부양 의지를 가지고 있을지, 실제 중국 경기가 어떻게 변동할지 면밀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계절이 바뀌어 있을지 모른다.



박건영 2004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몸담은 뒤 간판 펀드인 디스커버리펀드를 최고 수익률 펀드로 만들었다. 2009년 브레인투자자문을 세워 투자자문사 전성시대를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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