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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보다 빠른 입자’로 새삼 주목 … 실체 여전히 물음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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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호 28면

중성미자 망원경 내부의 광원튜브.

요즘 과학계에선 중성미자(Neutrion)가 큰 관심거리다. 얼마 전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이탈리아 팀들이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를 검증했다”는 보도를 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빛보다 빠른 입자가 발견됐다면 과학엔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다. 예를 들자면 변압기나 발전기 같은 것을 만드는 데 적용되는 전자기의 법칙 같은 것을 비롯해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해야 한다.

김제완의 물리학 이야기 유령 같은 소립자 중성미자

이 중성미자는 태생부터 특이한 소립자다. 보통 소립자들은 먼저 존재가 발견되고 성질을 뒤에 연구하게 되는데 중성미자는 그 반대였다. 먼저 존재가 예언되고 30년 뒤 발견됐다. 예언자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였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930년 12월 당시 동위원소 연구의 권위자들이 ‘난처한 문제’ 해결을 위해 튀빙겐 대학에 모였다. 동위원소 붕괴 시 방출되는 베타(β)선이 마치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를 설명할 방법이 막막했던 것이다. 이 현상은 당시의 모든 기초 과학을 뒤흔들어 놓을 만한 일이었다.

동위원소 붕괴에는 알파, 베타, 감마 붕괴가 있는데 이 중에서 전자를 방출하며 붕괴되는 현상을 베타(β) 붕괴라고 한다. β선은 전자로 되어 있어 자장을 통과하면 휘어지고, 얼마만큼 휘어지는가에 따라 에너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β 붕괴 때 방출되는 에너지가, 전자가 갖고 나가는 에너지보다 많아 마치 에너지 일부가 아무 원인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말하자면 사라진 에너지는 100인데 눈에 보이는 전자가 갖고 나간 에너지는 50뿐이어서 나머지가 어디로 갔는지 파악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권위자들이 모여 고민하고 있을 때 당시 30세였던 파울리는 무도회에 참석해 여유 있게 사교 춤을 즐기고 있었다. 자기는 이미 해답을 얻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친애하는 동위원소 권위자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편지를 선배학자들에게 보냈다. 거기서 ‘눈에도 안 보이고 전기나 자장의 영향도 받지 않으며 무게도 없는 유령 같은 작은 입자가 동시에 방출된다. 이 입자는 전기도 갖지 않고 무게도 없지만 에너지를 지닐 수 있는 능력이 있다. β 붕괴의 에너지는 없어진 게 아니라 유령 같은 이 소립자가 갖고 달아난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말을 들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페르미는 작은 중성자라는 뜻으로 ‘중성미자’라고 이름 붙였다.

중성미자는 아주 미미한 존재다. 100억 개의 중성미자가 우리 몸을 뚫고 지나가도 아무 느낌이 없다. 빛의 알갱이인 광양자 몇 개가 눈에 들어와도 곧 빛을 알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다르다. 중성미자야말로 유령 같은 소립자다.

중성미자는, 태양이 내는 찬란한 빛의 원동력인 수소핵융합 반응에서 에너지를 갖고 나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초 100억 개의 중성미자가 태양으로부터 오고 있다. 말 재치로 유명한 리언 레더먼(1988년 노벨상 수상)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관측할 수 없으면 이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중성미자는 겨우 존재하는 실체다’라고 표현했다.
‘겨우 존재하는’ 중성미자도 파울리의 예언 60년 뒤 드디어 발견됐고(1995년 프레더릭 라이너스가 발견했다) 이제는 요긴하고 필수불가결한 소립자로 정착됐다. 그러나 ‘겨우 존재하는’ 까닭에 아직 무게조차 모른다. 이처럼 아직도 신비한 입자인데 빛보다 빠르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경천동지할 발견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중성미자가 빛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가장 상식적인 이유는 상대성이론 때문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질량이 있는 입자가 진공 중 빛의 속도를 넘자면 무한대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무한대 에너지는 불가능하다. 둘째 이유는 충격파다. 비행기가 음속을 넘어서면 충격파가 생기는 것처럼 입자가 빛의 속도를 넘어서면 충격파가 생긴다. 이런 현상 중의 하나가 ‘체렌코프의 빛’으로 알려져 있고 이를 연구한 러시아 과학자 파벨 체렌코프는 노벨상을 받았다. CERN의 실험이 맞는다면 빛의 충격파에서 파생되는 전자-반전자 쌍이 관측돼야 하는데 이카루스라는 실험 팀이 독립적으로 조사했더니 그러지 않았다. 셋째, 발표대로 중성미자가 빛보다 60나노초 더 빠르다면 1987년에 폭발한 16만 광년 떨어진 초신성을 관측했을 때 중성미자가 적어도 3년 전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빛과 동시에 관측됐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를 댈 수 있다.

판사가 판결로 말하듯 과학은 실험 결과로 말해야 한다. 이번 이탈리아 팀의 실험과 별도로 중성미자의 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미노스란 팀은 미국의 페르미연구소 가속기에서 발생된 중성미자가 미네소타주의 검출기에 도착하는 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기획하고, 일본의 도쿄 근교 쓰쿠바에 있는 가속기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오사카 근방 가미오카의 검출기로 찾는 T2K(Tokyo to Kamioka) 실험도 있다. 모든 실험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면 이탈리아 팀의 실험이 옳은 것이다. 어쨌든 CERN의 관측이 맞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그게 물리학의 새 장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제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출신으로 과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한국과학재단 연구개발심의회 위원장, 전국대학 기초과학연구소 연합회 회장, 아·태 이론 물리센터 상임이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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