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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자식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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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호 29면

옛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1878~ 1953)의 외동딸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가 지난달 22일 미국 위스콘신 주 리치랜드의 한 양로원에서 숨졌다. 그러면서 독재자 가족의 불행한 삶에 새삼 관심을 갖게 된다. 스탈린은 평생 두 번 결혼해 혼외 자식을 포함해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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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결혼한 에카테리나 스바니제는 이듬해 아들 야코프(1907~1943)를 출산한 뒤 발진티푸스로 숨졌다. 1919년 41세의 스탈린은 19세의 나데즈다 알릴루예바와 재혼해 아들 바실리, 딸 스베틀라나를 얻었다. 이 부부는 싸움이 잦았는데 32년 한바탕 다툰 뒤 알릴루예바는 권총 자살을 했다.

장남 야코프 주가시빌리(1907~43)는 아버지의 고향 그루지야 성(姓)만 쓰도록 허용됐다. 평생 찬밥 신세로 14세까지 외가에서 자랐다. 스탈린은 소심한 성격의 야코프를 평생 미워했다. 권총 자살에 실패하자 “총도 똑바로 못 쏘는 녀석”이라며 경멸했다. 독·소 전쟁에 포병 중위로 참전했다 41년 7월 독일군의 포로가 됐다. 43년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포로가 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 또는 아돌프 히틀러의 조카인 레오 라우발 중위와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공식적으론 스탈린이 “모든 소련군 포로와 바꾼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야코프는 전우들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거절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는 원수와 중위를 맞바꿀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 “야코프라는 아들은 모른다”며 외면했다고 한다.

차남 바실리 스탈린(1921년생)은 공군에서 초고속 승진했다. 19세에 입대해 이듬해인 41년 12월 소령으로, 몇 달 뒤엔 대령으로 진급했다. 47년 상장(소련군에선 별 셋)을 달고 모스크바군구 공군사령관을 맡았다. 52년 군사 퍼레이드 때 폭격기 추락 사고가 나면서 해임됐다. 스탈린 사후 중노동수용소에 갇혔다가 60년 풀려났지만 2년 뒤 알코올 중독으로 숨졌다.

외동딸 스베틀라나는 스탈린 사후 어머니의 성을 썼다. 열여섯 살에 40세의 영화감독 알렉세이 카플러와 사랑에 빠졌다가 실연당해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졌다. 카플러는 시베리아 유형을 떠났다. 이듬해 모스크바대 급우인 그레고리 모로조프와 결혼했지만 곧 헤어졌다. 49년에는 아버지 오른팔인 안드레이 즈다노프의 아들 유리와 결혼했지만 이듬해 이혼했다. 63년엔 모스크바에 와 있던 인도 토후 가문 출신의 공산주의자 브라제시 싱과 사랑에 빠져 소치 별장에서 동거했지만 66년 사별했다. 67년 미국으로 망명해 부평초 같은 삶을 살았다.

스탈린은 북극권 솔비체고드스크에서의 유형 시절 집 주인 마리아 쿠자코바와의 사이에서 콘스탄틴 쿠자코프(1911~96)라는 아들을 얻었다. 레닌그라드 대학을 마치고 공산당 당료로 일했다. 스탈린 생전에 비밀경찰이 출생의 비밀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아갔다.

극동지역에 살던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고, 6·25전쟁을 배후 조종하며 한국과 악연을 쌓은 스탈린은 자식들과도 악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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