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아시아 미군 위상이 흔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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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沖繩)
의 피라미드 클럽은 금요일 밤이면 열기로 달아오른다. 이 디스코 클럽은 미군 병사들 사이에 밤새도록 춤추고 간혹 싸움도 벌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미군들이 현란한 조명 아래 힙합 춤을 춘다. 한쪽에선 갱처럼 머리에 스카프를 동여맨 사병들이 싸우는 시늉을 한다. 때론 그런 장난이 진짜 싸움으로 바뀐다.

현지 여성을 두고 다투거나 술을 엎질러 시비가 일기도 하고, 해병대원들 간에 누가 더 사나이다운지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주일미군 사령부는 장병들에게 부대 밖에선 행동을 자중할 것을 경고했다. 그러나 상당수가 갓 스무 살을 넘긴 젊은 사병들은 술이 열 잔쯤 들어가면 행동이 거칠어지게 마련이다. 해병대 상병 다이아몬드 케네디(27)
는 “언젠가는 사방에서 싸우는 모습만 본 날도 있었다. 여기선 아무리 미친 짓을 해도 잡히지 않을 것처럼 행동한다”고 말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은 그같은 난폭성이 범죄로 이어질 때다. 이번달에도 19세의 해병대원이 14세 소녀의 집에 침입해 잠자는 그녀를 성추행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의 불미스런 행동에 이골이 나 있다. 1995년엔 해병대원 3명이 12세 소녀를 납치, 강간한 사건이 발생해 미·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약 4만 명에 이르는 주일미군에 대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그 뒤로 미군 장교들은 개전의 정을 보여 왔다.

지난주 미군은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주일 美 해병대 책임자 얼 B. 헤일스턴 중장은 사죄의 표현으로 이나미네 게이이치(稻嶺惠一)
오키나와 지사에게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부하들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토머스 폴리 주일 美 대사도 사과의 뜻에서 몸을 굽혔다. 일부 오키나와 주민들은 용서할 태세가 아니다. 이나미네 지사는 “주민들의 불만은 마치 화산 밑의 마그마 같아 무슨 일이 터지면 이내 폭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성추행 사건으로 지정학적 위기가 초래됐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G8 정상회담 참석차 오키나와에 와 있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매우 민감하다. 미국의 지난주 사과는 요즘 아시아에서 미군이 차지하는 미묘한 위치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미군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지역 안보의 일익을 맡아 왔다.

그러나 미군 주둔에 반대하는 감정은 여러 해 동안 고조돼 왔다. 불미스런 이번 사건도 미군철수 압력을 가중시킨다. 다카자토 스즈요(高里鈴代)
오키나와縣 나하(那覇)
시의회 의원은 “왜 어린 소녀가 집에서 편히 잠잘 수 없는가. 이번 사건은 美 해병대 철수의 당위성을 보여준 또다른 사례”라며 흥분했다.

지난달 열린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도 3만7천 명에 이르는 주한미군의 향후 역할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 장기적으로 병력감축은 주일미군과 제 7함대 등이 포함된 미국의 아시아 보호막을 약화시킬 수 있다. 미국이 카드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태평양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치도 흔들릴 수 있다.
아시아 주둔 미군 문제는 이번주 오키나와 정상회담의 의제는 아니다. 물론 최근의 남북 정상회담 문제는 짚고 넘어가겠지만 주요 의제는 하이테크 산업의 발전과 질병의 확산 억제 등이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다면 과연 적은 누구이며 미군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가 모호해진다. 동아시아 최대 미군기지인 가데나(嘉手納)
공군기지 주변에서 7월 20일 약 2만 5천 명의 시위자들이 인간사슬 시위를 통해 강조하려는 점도 바로 그것이다.

한국에선 규모는 작아도 소란스러운 반미 시위가 자주 일어난다. 태풍의 위세가 꺾인 지난주 서울의 美 대사관 주변에선 1백여 명의 시위대가 ‘양키는 물러가라. 한국은 더이상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다’ 등의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 주동자 중 한 명인 최종수 신부는 “한국의 현대사는 미국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사”라고 규정했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 실시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57%가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미군이 단계적으로 철수해야 한다고 대답했고, 11%는 주한미군이 완전 철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미군의 계속 주둔을 선언했다. 그러나 반미감정은 지난해 미군이 한국전 당시 노근리에서 수백 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계속 고조돼 왔다. 이제 한국인들의 분노는 ‘주한미군 피의자의 유죄 확정 전에는 미군 당국이 피의자의 신원을 보호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한미행정협정’(SOFA)
에 쏟아지고 있다.

미군 사령부는 한국인들이 미국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반미 ‘기습조’를 조직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상사 방지를 위해 미군 사령부는 지난달 미군과 그 가족들에게 기지를 떠날 땐 반드시 2명 이상 동행할 것을 지시했다.

물론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외교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지역의 긴장이 여전히 위험 수준이라고 강조한다. 중국과 한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경계하고, 대만·필리핀·일본은 중국군의 병력증강에 우려를 표시한다. 또 중국은 미국이 추진하는 미사일 방어계획으로 자국 안보가 위협받게 될 것을 우려한다. 그런가 하면 美 정책입안자들은 향후 아시아에서 중국이 북한 대신 최대의 군사적 위협이 될 것인지를 두고 격론을 벌이고 있다.

美 해병대 퇴역장성인 헨리 스택폴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소 소장은 “전체적으로 볼 때 아시아는 2년 전에 비해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가 여전히 미군을 중국의 위협을 막기 위한 보호막으로 간주한다. 리덩후이(李登輝)
前 대만 총통은 이에 대해 “오키나와 회담은 매우 중요하다. 이번 회담은 미국이 아시아의 안보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외교전을 능숙하게 펼치지 않으면 중국에 허를 찔릴 수 있다. 최근 몇 달간 대만에 대한 압력을 강화해 온 중국은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통일 한국은 “어느 나라의 영향권에 편입되느냐에 따라 우방이 될 수도 있고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얼 헤일스턴 중장은 말했다. 중국편에 붙는 한국은 일본과 미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좀더 유동적 상황이 되면 미국은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미국이 패권주의로 나올 기미를 조금이라도 비치면 군비 증강이나 현지인들의 적대적 반응을 촉발시킬 수 있다. 한국은 클린턴 정부가 대통령 선거철을 의식한 나머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유보한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도널드 그레그 前 주한 미국 대사는 “클린턴 정부는 이 문제를 장기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서툴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불미스런 사태들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한국인들은 현재로선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주는 세력으로 미군의 주둔을 원한다. 세종大 김정원(金正源)
교수는 “미군만이 이 지역에서 전쟁을 억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긴박감은 사라질지 모른다. 미국이 추진중인 전역미사일방어(TMD)
계획에 대해 일본은 늘 미온적 태도를 보여 왔다. 도쿄 개발도상국연구소의 선임 연구원 고마키 데루오(小牧輝夫)
는 “북한의 위협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장기적으론 전역미사일 문제를 재고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2년 전만 해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前 총리는 포린 어페어스誌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의 일본 주둔은 금세기 안에 끝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아직도 미국과의 우방관계를 강력히 지지하지만 주일 美 대사관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54%가 주일미군의 감축을 원했다. 연간 약 5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군 주둔비용은 대부분 일본 정부가 부담하는데 야당들은 삭감을 주장한다.

1백30만 명의 오키나와 주민들은 그 문제에 대한 발언권이 없다.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미군 기지들을 국방의 초석으로 간주하며 현지 분위기에 따라 안보정책을 바꿀 의사는 없다. 그 기지들엔 8천 명의 현지인이 고용돼 있고, 거리엔 美 육·해군 군용 상점과 영어 간판이 즐비하다.

오키나와의 중심도시 나하의 젊은이들은 미군을 흉내내 개조된 자동차를 타고 랩음악을 듣는다. 그러나 오키나와는 일본의 최대 빈곤지역으로 실직률이 일본 전체 평균치의 배인 7.9%에 이른다. 주로 관광과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은 끔찍한 교통혼잡과 땅값 상승에 대한 책임도 미군 탓으로 돌린다. 1995년의 강간사건은 반미감정을 고조시켰다. 1996년 실시된 구속력 없는 주민투표에서 주민의 90%가 미군기지 감축을 원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한 주권을 가져본 적이 없다. 15세기에 이 섬은 일본과 중국의 무력투쟁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러던 중 일본 정부가 1879년 자국 영토로 편입했으며 그 때도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방인 취급을 당했다. 2차대전 중엔 오키나와 주민 수십 명이 미군 스파이라는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살해됐다.

1945년 4월 시작된 오키나와 전투에선 주민 20만 명이 숨졌다. 전투가 끝난 뒤 현지에 주둔한 미군은 그곳을 전진기지로 사용했다. 베트남戰때는 B52 폭격기가 그곳에서 발진했다. 1972년 일본에 반환됐지만 미군은 계속 남았다.

한국과 일본이 미군 주둔을 계속 반기도록 하려면 미국 정부는 치밀한 홍보작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미국은 이미 8년 전 주둔 지속을 정당화하는 데 실패해 필리핀 수비크灣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에서 쫓겨났다. 미국은 현재 오키나와에서 험악해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강간사건 이후 미군은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강화했다. 미군 병사들이 현지의 환경정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등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 정도론 충분치 않고 한층 더 분발해야 할 것이다. 오키나와 전통음식을 파는 한 식당의 주인 오나가 다케오(42)
는 자기 식당이 버릇 없는 미군이 아닌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는 “또다른 소녀가 다치기 전에 해병대가 이곳을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들이 없어도 우린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또다른 디스코 클럽에선 미군을 흉내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일본 청소년들이 모여 즐긴다. 한 소년은 “우리 형은 3주 전 美 공군 사병들과 대판 싸웠다. 정말 멋있었다”고 말했다. 미군 병사들이 그곳에 계속 주둔하려면 이제부터는 점잖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Gregory Beal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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