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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전기 외국기업 퍼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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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심상복
경제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정부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매달리고 있다.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한국에 지어 달라는 것이다. 지난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방한한 장 필립 쿠르트와 MS 국제담당 사장을 만났다. 한국은 지진·태풍으로부터 안전하고, 정보기술(IT) 인프라가 훌륭하며, 국민의 IT 이해도와 활용도도 높기 때문에 최적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쿠르트와 사장은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고 한다. 최 위원장은 지난 9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MS에 같은 요청을 했다.

 IDC는 서버·스토리지·네트워크 기기 등 인터넷 서비스를 위한 각종 IT 장비를 모아두는 곳이다. 내부는 책 대신 수백, 수천 대의 컴퓨터 본체가 촘촘히 꽂혀 있는 도서관을 연상하면 된다. 24시간 가동되는 인터넷 특성상 이곳 컴퓨터에는 1초의 끊김도 없이 전기가 공급돼야 한다. 수많은 컴퓨터가 내뿜는 열을 식혀줄 냉각시스템은 필수다. 과열되면 바로 장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내 온도를 섭씨 18~21도로 유지하기 위해 대형 에어컨을 돌린다. 전기로 달궈진 열을 전기로 식히는 구조다. IDC가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이유다.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위한 대형 IDC 한 곳의 연간 전력사용량은 약 6만㎿h라고 한다. 이런 게 5곳이면 인구 10만 도시의 가정용 전기소비와 맞먹는다. IDC가 시민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동일본 쓰나미 얼마 뒤인 지난 5월 일본 소프트뱅크가 KT의 김해 IDC를 빌려 쓰기로 하면서다. 손정의 회장이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은 자연재해가 적은 데다 무엇보다 전기료가 싸기 때문이었다. 헐값 전기가 외국기업을 불러들인 셈이다. 그런데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9·15 정전대란을 경험했듯이 전기는 당장 우리가 쓰기에도 넉넉지 않은 상태다. 생산원가보다 10%나 낮은 가격이 과소비를 불러일으킨 데다 새 발전소 완공은 아직 3~4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전기 과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지적은 귓전으로 듣고, 싼 전기를 외국기업에 주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구글·인텔·IBM에 이어 MS에도 목을 매고 있다. 원가도 안 되는 요금으로 한전의 적자는 날로 쌓이고 있다. 지난해 영업적자는 1조8000억원을 기록했고, 누적부채는 33조원을 넘어섰다. 공기업인 한전의 적자는 곧 그만큼의 세금 투입을 의미한다.

 요즘 세상에 외국기업 유치는 모든 정부의 지상과제다.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 수입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본 도레이도 싼 전기에 매력을 느껴 경북 구미에 대규모 탄소섬유 공장을 짓고 있다. 이런 제조업체는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지만 IDC는 고용효과도 미미하다. 대형 IDC를 짓는 경우라도 컨테이너 수십 개 정도의 공간이면 된다고 한다. 투자금액도 생각만큼 크지 않고, 핵심 장비인 서버는 외국 제품에 의존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고용은 어떤가. 과거엔 고장 난 서버를 찾아내고 교체하는 사람을 썼다. 그런데 요즘은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한다. 한 방(컨테이너) 안의 서버 중 고장비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아예 컨테이너를 통째 교체하는 식이다. 결국 외국기업 IDC는 우리의 싼 전기요금만 취하고 경기 활성화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 의견이 많다.

 최시중 위원장은 이것도 모르고 IDC 유치에 온 힘을 쏟는 걸까.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 IT 한국의 위상을 높여주는 정도다. 그럼에도 이처럼 공을 들이는 건 정치적 효과를 겨냥한 게 아닐까.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글로벌 기업을 유치했다며 자랑하고 싶은 거 말이다. 실속은 쥐뿔도 없으면서.

심상복 경제연구소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