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법원 무시하고 막나가는 판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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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한민국 대법원은 무책임하고 무력했다.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정치적 입장을 공표해 물의를 빚은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윤리위원회를 열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무리했다. 최 부장판사를 징계위에 회부하지 못한 것은 물론 ‘법관은 SNS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하나마나 한 권고 한마디로 끝냈다.

 최 부장판사 발언과 이후 일부 판사들의 행동은 그 자체로 국민들에게 깊은 실망과 근심을 안기는 것이었다. 일단 그들이 올린 글의 내용과 어휘 구사력 수준은 기대 이하였다. “뼛속까지 친미인…나라를 팔아먹은…”(최 부장판사), “보수편향성 판사들은 사퇴해라…개그맨이 부럽다”(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 “징계 기타 불이익한 처분이 내려진다면 많은 판사들은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을 것”(송승용 수원지법 판사). 이 나라 판사들이 시정잡배나 쓰는 수준 낮은 어휘를 쓰고,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운동권 구호 같은 글을 쓰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또 SNS가 사적 영역이므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식수준도 어처구니없다. SNS는 발언을 올리면 순식간에 확산되는 성격을 가진 유사미디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걸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은 순진하거나 정보통신에 지나치게 무식한 게 아니라면, 그런 척 세상을 속이는 거다.

 물론 어느 조직에나 일탈(逸脫)자는 있는 것이고 일부로 전체를 재단하는 것은 옳지 못하기에 대법원이 이들을 제재해줄 거라고 믿었다. 최소한 ‘판사는 중립적이고 판결은 공정하다’는 사회적 믿음과 법원은 추상같은 영(令)이 서는 우리 사회 마지막 보루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마치 국회에 최루탄을 터뜨린 김선동 민노당 의원을 처리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국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는 대법원이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고 낮은 자리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불법과 폭력과 괴담이 판을 치는 이 아노미(무규범 상태) 같은 정국에 대법원이라도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어른이기를 기대하는 게 너무 지나친 욕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