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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부자 주머니에 기대면 결국 손가락 빠는 건 가장 배고픈 사람이 될지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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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1784년 10월 9일 정조 임금이 어명을 내린다.

 “매양 칙사 일행을 맞아 나례(儺禮)를 행할 때 해당 도감에서 탈을 만드는 밑천이라며 부잣집에 돈을 요구한다. 또 임시무대를 설치할 재목을 마련할 때 백성들에게 소란을 피우는 등 폐단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이번에는 낱낱이 금지하게 하라. (…) 심지어 부유한 백성들의 재물을 강제로 빼앗는 일은 더욱 금지해야 할 것이다.”

 『정조실록』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인간의 역사는 결코 발전하지 않는다. 그저 돌고 돌 뿐이다.

 조선은 청나라 사신이 올 때마다 막대한 돈을 들여 접대를 해야 했다. 접대에는 나례라고 일컫던 연극·무용 공연도 포함돼 있었고, 적지 않은 비용과 인력 동원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비용을 정부 아닌 부자들에게 부담시켰다. 고관대작들이 주머니를 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부를 축적한 상인들에게서 이런저런 명목을 들어 거둬들였다.

 최근까지 기업들에 요구되던 준조세,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부자세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 아닌가. 기업들이 기부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거나,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부의 양극화가 전 지구적인 현상이 되고, 중산층은 짜이고 짜여서(squeezed) 더 짜낼 것도 없게 된 상황에서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선택 아닌 필수 과목이 됐다.

 하지만 증세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부자에 대한 감정적 응징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무리한 증세로 부자들의 근로의욕이 꺾였을 때 파이는 작아지고, 결국 손가락을 빠는 건 가장 배고픈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부자 증세 목소리에서 포퓰리즘의 가래가 끓는 것도 그래서다. 사방에서 새는 세금의 누수를 막고 국민개세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세제개혁을 고민해야 하는 게 우선일 텐데 말이다.

 조선시대 부자 상인들이 강제부담을 감내한 것은 권력과 결탁한 떡고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누수를 없애고 양반·상민 구별 없이 올바르게 과세를 했다면 조선 정부가 부자들에 기대지 않고서도 사신 하나 대접할 여력이 없지는 않았을 터다.

 하이에크가 “아무도 읽어서도 안 되고 물들어서도 안 되는 인물로 찍혔지만 결국 거의 모든 사람이 그를 읽고 물들어갔다”고 격찬한 사상가 버나드 맨더빌은 논란 많던 그의 책 『꿀벌의 우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는 관대함이 아니라 필연성에 기대야 한다. 잘살고 못사는 것을 공무원과 정치인의 미덕과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국민들은 불행하며 법질서는 언제까지나 불안할 것이다.”

이훈범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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