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해보기나 했어?” … 정주영 창업정신 가르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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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조선소 부지 사진만 들고 유조선을 판다.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배를 만들 자금을 구한다. 그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이 실적 자료다.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1970년대에 실제 있었던 일이다. 울산 백사장 위에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를 건설한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이야기다.

 당시 조선소 건설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정 회장은 돈을 빌리려고 세계를 돌아다녔다. 한국의 상환능력을 의심하는 해외 기업인을 상대로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내밀며 선조들의 기술을 팔았다. 조선소가 들어설 울산 부지 사진을 들고 가, 26만t급 배 2척을 수주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아산은 복잡한 상황을 직관적으로 단순화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머릿속의 계산이나 책상의 기획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딪쳐 ‘하면 된다’는 경험을 쌓았다.”

 올 3월 정 회장의 10주기를 앞두고 열린 추모 학술 세미나에서 연세대 송복(사회학) 명예교수는 정 회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전쟁 직후, 폐허 상태였던 한국 경제를 위해 정 회장은 불멸의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불가능한 일에 부딪힐 때마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라며 실행에 옮긴 덕이었다.

 이런 정 회장의 창업정신을 잇기 위한 발걸음이 시작됐다. 29일 아산나눔재단이 서울 숭실대학교에 연 ‘정주영 창업캠퍼스’를 통해서다. 올해 정 회장 서거 10주기를 맞아 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설립된 아산나눔재단은 첫 사업으로 ‘청년 창업’에 힘을 쏟기로 했다. 정 회장의 ‘하면 된다’는 정신을 계승할 제2의 정주영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정주영 창업캠퍼스는 서울 상도동 숭실대학교 인근에 지상 6층, 지하 4층(5300㎡) 규모로 지어졌다. 민간기업이 만든, 최초의 종합창업지원기관이다. 1998년에 국내 대학 최초로 ‘정주영 창업론’을 개설해 예비 청년 사업가를 육성해온 숭실대학교를 창업캠퍼스 협력대학으로 삼았다. 이날 개원식에는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김동선 중소기업청장, 오연천 서울대학교 총장, 김대근 숭실대학교 총장, 황철주 벤처기업협회 회장, 이종갑 벤처캐피탈협회 회장,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앞으로 정주영 창업캠퍼스는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맞춤형 지원을 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창업 전문가들이 마케팅·재무·영업 등 창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이르면 다음 달께 캠퍼스 수강생을 모집한다. 나이 제한은 없다. 창업 계획서를 받아 서류심사·면접을 거쳐 수강생을 뽑을 계획이다. 캠퍼스 입주를 전제로, 팀 단위로 따지면 20여 개팀을 선발한다. 아산나눔재단 관계자는 “각자의 창업 계획에 따라 창업 교육부터 투자자 연계, 사후 관리까지 맞춤형 창업지원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산나눔재단은 서울 창업캠퍼스를 시작으로 전국 16개 시·도에 창업캠퍼스를 지을 계획이다.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정보기술(IT)·바이오·농업벤처 등의 분야를 정해 맞춤 지원을 한다. 또 신생 창업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에인절 투자’ 시스템도 활성화한다. 창업경진대회, 청년 기업가 캠프 등 정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확산될 수 있게 다양한 행사도 열 방침이다.

한은화 기자

정주영 회장 창업 관련 어록
- “창업의 가장 근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낙관적인 사고와 자신감이라고 말할 것이다.”

- “모든 일에 있어서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가능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다.”

- “나는 인간이 스스로 한계라고 규정짓는 일에 도전하여, 그것을 이루어내는 기쁨을 보람으로 기업을 해왔고 오늘도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만들면 된다.”

자료 : 아산나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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