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장이 얻어맞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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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찬 종로경찰서장(붉은색 동그라미)이 26일 밤 ‘한·미 FTA 반대 집회’ 해산을 권유하기 위해 야5당 대표 쪽으로 다가가자 한 집회 참가자가 박 서장의 모자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동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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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선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불법 시위를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선 국회의원이 만든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이 불법 시위대에 얻어맞는 나라. 2011년 11월 26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현실이다.

 서울 광화문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반대하는 시위대에게 폭행을 당한 박건찬(44·총경) 서울 종로경찰서장은 27일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경찰이 당당하게 집회 주최자를 만나 조기 해산을 부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너진 법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언제든지 (똑같은 일을)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폭행당한 후 기자회견하는 박 서장. 그의 왼쪽 계급장이 뜯겨 있다. [연합뉴스]

 -지금 심경은.

 “참담할 뿐이다. 관할 경찰서장으로서 직분을 다하고자 한 일이다 .”

 -무리하게 갔다는 지적이 있는데.

 “경찰서장으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지금까지 원칙을 갖고 경찰생활을 한 모든 것을 폄훼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공동대표 이강실 진보연대 대표·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등)는 26일 오후 6시40분부터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미 FTA 반대 범국민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민주당·민노당·창조한국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 등이 ‘야5당 합동 정당 연설회’를 명목으로 사실상 시위 장소를 제공한 것이다. 현행법상 정당연설회는 집회 신고 대상이 아닌 점을 이용한 편법이었다. 경찰이 이날 연설회를 불법 시위로 규정하고 해산을 권유하면서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오후 9시30분쯤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이 시위대에서 연설하고 있을 때, 박 서장이 시위대열 선두에 있던 야5당 대표와 만나기 위해 광화문광장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이때 박 서장을 본 시위 참가자들이 “매국노” 등 욕설을 퍼부으며 폭행했고, 계급장도 뗐다. 일부는 박 서장을 조현오 경찰청장으로 착각해 “매국노 조현오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박 서장이 봉변을 당한 곳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시위대가 청와대로 행진하려다 경찰이 장애물로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에 가로막혔던 부근이었다. 촛불시위대는 경찰의 컨테이너박스를 ‘명박산성’으로 부르며 조롱했다.

 박 서장이 전치 3주의 진단을 받는 등 이날 시위에서 경찰 38명이 부상했다. 경찰은 박 서장을 폭행한 혐의로 김모(54)씨를 27일 긴급체포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을 용납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최선욱·정종훈 기자

그 시간 시위대 속 정치인

김진애 박영선 이종걸 정동영 정범구 천정배(민주당) 김선동 이정희(민노당) 조승수(무소속) 심상정(전 진보신당 대표) 천호선(국민참여당) ?
당별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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