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덕 “물대포 자제하니 직접 충돌 … 이런 일 생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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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26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미 FTA 반대 집회에서 시위대로부터 폭행당한 뒤 대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강덕 서울청장

26일 한·미 FTA 반대 집회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시작됐다.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되고 있던 야 5당 주최 정당 연설회에 집회 참가자들이 합류하려 했지만 경찰이 집회 불가 구역을 이유로 이를 막았다. 이후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주도해 시위대와 함께 본격적으로 광화문 광장 진입을 시도했고 2200여 명(경찰 추산)의 시위대는 경찰과 대치하다 하나 둘씩 차도로 진입했다. 결국 오후 9시쯤 이순신 동상 앞 세종로 사거리가 집회 참가자들로 메워졌다.

경찰에 따르면 박 서장은 야 5당 대표와 면담하려고 가던 중 시위대로부터 얼굴 부위를 수차례 손으로 맞았고 모자와 안경이 벗겨지고 계급장이 뜯어졌다고 밝혔다. 작은 사진은 박 서장을 때리려는 시위대의 손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 손이 보이는 모습. [연합뉴스]

 30분 뒤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은 정치인들이 있는 시위대의 맨 앞으로 직접 향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이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단상에 올라가 연설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시위대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등지고 있었고, 야당 대표들은 시위대 선두에서 청와대 방향에 설치된 단상을 바라보고 앉은 상태였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관할 서장이 직접 해산을 요청하면 이를 받아들여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회색 근무복 점퍼 차림의 박 서장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행을 했다. 박 서장에게 일부 시위대가 주먹을 휘둘렀다. 박 서장은 입 주변을 정통으로 맞아 윗입술이 부풀어 올랐고 안경이 벗겨졌다. 시위대는 박 서장의 모자를 벗기고 견장을 떼냈다. 박 서장 주변에 있던 10여 명의 경찰관이 제지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0분 넘게 박 서장 주변에서 경찰과 시위대 간 몸싸움이 계속되다가 박 서장 일행이 드디어 시위 대열에서 빠져나왔다. 시위대 20여 명이 뒤쫓자 박 서장 일행은 세종로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건너 세종로파출소로 피신했다. 이강덕 서울경찰청장은 “시위대의 인권을 고려해 최근 물포(물대포) 사용을 자제했는데, 어제는 물포를 쓰지 않아 경찰과 시위대 간 직접 대치로 이어지면서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당이 ‘폭행 유도설’을 제기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김기현 대변인은 “경찰서장이 시위대에게 둘러싸여 폭행당하는 현장을 보고도 야당 지도자들은 강 건너 불구경만 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변인은 “경찰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는 와중에 박 서장이 시위대 한복판으로 들어가 폭력을 유도하는 듯한 상황을 만든 것은 신중하지 못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이날 박 서장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김모(54)씨는 지난 8월에도 캐슬린 스티븐스 당시 주한 미국대사의 차량에 물병을 던졌다가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날 연행된 불법집회 가담자 중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딸인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 수진(21)씨도 포함돼 있었다. 경찰은 사진 채증 등을 통해 불법 시위 가담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대로 이들을 사법 처리할 예정이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지난주 FTA 반대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로 향하다 교통사고로 숨진 한신대 신학과 권지현(21)씨를 추모하는 시간도 가졌다. 권씨는 경기도 오산시에서 친구들과 함께 서울로 오던 중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량과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최선욱·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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