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직업훈련원 → 국립기술대로 바꾼 ‘한국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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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캄보디아 국립기술대학의 배대한 교수(오른쪽)가 학생 우이 샘을 지도하고 있다.

캄보디아 청년 우이 샘(24)은 4년 전까지만 해도 캄보디아 동부 시골에서 희망 없이 사는 그저 그런 젊은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4년 전 우연히 본 캄보디아 국립기술대학(NPIC) 브로슈어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브로슈어를 보자 그의 머릿속에는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입학 지원서를 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대학의 전기·전자과에 입학하며 인생 설계가 달라졌다. 한국인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꿈을 키우고 있다. 한국으로 유학 가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교수가 되는 게 그의 꿈이다. 그는 “지금 4학년이라 곧 졸업한다”며 “현재 학비가 부족해 공부를 계속할지 일을 해서 학비를 번 뒤 공부할지 결정하지 않았지만 나에겐 꿈이 생겼다”며 밝게 웃었다.

 국립기술대는 한국이 당초 직업훈련원으로 자금을 지원한 곳이다. 2002년 2770만 달러 지원 결정을 한 뒤 2005년 한국 기업이 건물을 완공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곳에 건물만 지원하지 않았다.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교수진까지 지원했다. 그러자 캄보디아 정부는 이곳을 단순한 직업훈련원이 아니라 아예 국립대학으로 지정했고 그해 5월 국립기술대학으로 개교했다.

 이 학교는 운영이 독특하다. 총장은 한국인과 캄보디아인 두 명이다. 한국인 총장은 외국인 교수 인사권과 교육 콘텐트 지원, 교수법 개발 등 대학 운영의 핵심 업무를 담당한다. 교수진 100여 명 가운데 27명인 한국인 교수들은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한 푼도 받지 않는다. 7명만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나머지 20명은 모두 자원봉사자다. 한국에서 은퇴한 교수나 안식년을 받은 현직 교수가 자원봉사 방식으로 이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교수진 가운데 배대한(43) 전기·전자학부 교수는 “한국에서 학교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며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교수 인력을 모집하기 위해 해마다 한국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이 학교 창립 당시 부산의 한 대학에 전임교수로 있었으나 같은 교회에 다니던 지인으로부터 이 학교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배 교수는 “학교가 지난해부터 재정자립을 했다”며 “교육과 기자재의 질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 졸업생이 몇 년 전에는 캄보디아 국비 장학생 시험에서 1위를 할 정도로 캄보디아 내에서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학교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경안전선(현지법인명 KAC)의 이희도 법인장은 “캄보디아 직원을 뽑으면 열정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학교 출신을 채용해보니 다른 출신 학생보다 더욱 열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김성철 국립기술대 총장은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며 “무기력해 보였던 학생들이 이제는 나라를 생각하고 정의롭게 살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김 총장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학생들이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학생 사이엔 ‘더불어 산다’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김 총장은 “학생들이 자기 자신밖에 몰랐다”며 “하지만 학교 생활을 통해 더불어 사는 법을 익히면서 캄보디아의 국가 자산이 되고 있다. 그런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프놈펜=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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