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도문대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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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은 미식가였다. 그의 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覆<74FF>藁)』에는 ‘도문대작(屠門大嚼)’편이 있다. 도문(屠門)은 푸줏간을 뜻하고, 대작(大嚼)은 크게 입맛을 다시는 것을 뜻한다. 고깃집 앞을 지나면서 입맛만 다신다는 뜻이다. 후한(後漢) 사람 환담(桓譚)이 지은 『신론(新論)』에 나오는데, 장안(長安: 서안)에서는 서쪽으로 향하면서 웃는 것이 즐겁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고기 맛을 아는 사람들이 푸줏간(屠門)을 대하면 크게 입맛을 다시기(大嚼) 때문이라는데 아마 푸줏간이 서쪽에 있었던 것 같다.

 조조(曹操)의 아들인 조식(曹植)도 “푸줏간 앞을 지나며 크게 입맛을 다지는 것은 비록 고기를 얻지는 못해도 귀인이 된 것 같은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허균은 “자신의 집은 가난했지만 선대부(先大夫: 허엽)께서 살아 계실 때는 사방에서 별미를 예물로 바치는 사람이 많아서 진귀한 음식을 많이 맛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식욕과 성욕은 모두 본성이고, 음식은 생명에 관계된다”고 서술했다.

 공자는 『논어(論語)』 ‘리인(里仁)’편에서 “선비로서 도에 뜻을 두고도 낡은 옷과 거친 밥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는 더불어 도를 논의할 수 없다(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고 가르쳤지만 허균은 “선현께서 음식을 위하는 자를 천하게 여겼지만 그것은 이익을 탐하고 주창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지 어찌 음식을 폐하고 말하지도 말라는 것이겠는가?”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그런지 유가(儒家)에서는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면서(一簞食, 一瓢?) 도를 즐기는 안빈락도(安貧樂道)를 최고 경지로 쳤지만 유학이 관학(官學)이 된 이후에도 음식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신당서(新唐書)』에는 조무(趙武)의 『사시식법(四時食法)』 『태관식법(太官食法)』같은 책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식경(食經)』을 싣고 있다. 제갈영(諸葛潁)의 『회남왕식경(淮南王食經)』, 포박자(抱樸子)의 『태청신선복식경(太?神仙服食經)』 『사시어식경(四時禦食經)』 『신선복식경(神仙服食經)』 『신선약식경(神仙藥食經)』을 비롯해 노인종(盧仁宗), 최호(崔浩), 축훤(竺暄)이 각각 저술한 『식경(食經)』이 등재되어 있다.

 중앙SUNDAY ‘문화매거진 S’의 제철수라상에 관한 새 연재가 눈에 띈다. 조식의 말마따나 비록 도문대작일지라도 입맛을 다시는 자체가 건강에도 좋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