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 @ 월드] 비행기안서 e-메일 진료

중앙일보

입력

몇년에 한번쯤은 여행 중 예기치 못한 사고에 휘말리는 수가 있다. 나는 얼마 전 분진(粉塵) 때문에 갑자기 알레르기가 생겨 고생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방문한 미국의 한 중소도시에서는 대규모 도시재개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갖가지 분진이 나를 덮쳤는데, 그 일부가 안경테에 붙어 코로 침투했다.

도착한 그 날로 코가 빨갛게 부풀어오르는 바람에 얼굴은 ''라이언 킹'' 처럼 돼버렸고 안경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려운 것은 물론 구토까지 하게 됐다. 얼굴을 씻는다든지 소독하는 정도로는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병원을 찾아가 정밀검사를 받고 처방전을 받았다. 의사는 하룻밤 푹 자면 나을 것이라고 말한 뒤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라며 명함을 주었다.

호텔로 돌아와 약을 먹고 코에 아이스팩을 붙인 뒤 잠을 잤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증세는 전날과 별 다를 게 없었지만 분명히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그날 아침 나는 공항에서 의사에게 e-메일을 띄웠다.

- 라이언 킹이 의사 선생님께,

"어제 친절히 진료해줘서 고맙습니다. 오늘 아침은 조금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부기도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뭔가 느낌이 안좋습니다. 밤새 조그만 물집이 몇개 생겼습니다. 가려움도 여전합니다."

그리고 1시간이 채 안돼 비행기 속에서 나는 의사의 답신을 받았다.

- 의사가 라이언 킹님께,

"이 e-메일을 받을 때까지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면 증상을 다시 한번 소상히 말해주십시오."

그날 밤 나는 또 e-메일을 보냈다.

- 다시 라이언 킹이 의사 선생님께,

"부기는 가라앉았지만 가려움증은 오히려 심해졌습니다. 벌레에게 물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답신이 또 금방 도착했다.

- 의사가 라이언 킹님께,

"부기가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 것은 좋은 징후입니다. 더 가렵다는 것도 많이 나아간다는 징후입니다. 가렵거나 피부가 빨개지는 것이 계속될 경우 히드로코티존(부신 호르몬의 일종)1%를 함유한 연고를 하루 세번 발라보도록 하십시오. 이 크림은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습니다."

즉시 크림을 사서 발랐더니 이틀도 안돼 확연히 좋아졌다.

1주일 후 영국으로 귀국할 때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흔적조차 없을 만큼 깨끗이 나았다.

의사와 라이언 킹이 나눈, 컴퓨터를 매개로 한 대화는 감사의 메시지와 함께 끝이 났다.

e-메일 몇번 오가는 것으로 이뤄진 이 ''원격진료'' 는 정보화 사회의 혜택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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