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삶의 속도 늦추고 내 손 직접 썼더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내 손 사용법
-텃밭부터 우쿨렐레까지
좌충우돌 DIY 도전기
마크 프라우언펠더 지음
강수정 옮김, 반비
312쪽, 1만5000원

도올 김용옥(63) 원광대 석좌교수는 우연한 기회에 봉혜(鳳兮)라 이름 지은 토종닭을 키우게 된 사연을 즐겨 얘기한다. 닭을 기르며 느꺼웠던 마음을 『계림수필(鷄林隨筆)』에 풀어놓았는데 얼마나 좋았던지 봉혜를 일러 ‘시중(時中)의 달자(達者)’라 했다. 도올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을 쓴 프라우언펠더도 닭장을 만들고 닭과 함께 살면서 “이 멋진 동물을 키우는 건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경험 가운데 하나”라고 털어놓는다. 손을 꼼지락거려 뭔가 만들고 성장시키고 이룩해가는 그 색다른 의식 상태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 즉 자기 자신과의 관계라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명상을 통해 그 상태에 도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손을 사용하는 작업도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다.”

 지은이는 최근 미국에서 새롭게 불고 있는 ‘DIY(Do it yourself)’ 운동을 이끄는 잡지 ‘메이크’의 편집장이다. 한때 잘나가던 IT 전문 칼럼니스트였다가 2001년 들어 인터넷 회사 수백 곳이 나자빠지면서 “돈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에 맞닥뜨렸다. 남태평양의 외딴 섬 라로통가에 가서 이른바 ‘라로 타임(느긋한 속도에 맞춰 흘러가는 삶)’을 시도해보기도 했으나 삶의 방식을 바꾼 게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환경만 바꾸었기에 다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다. “알고 보니, 우리가 문제”였다는 걸 깨달아서다. 그래서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내 손을 써서 내가 속한 세계와 유의미한 방식으로 소통할 방법을 찾아내겠다”고 결심한 뒤 실행한 ‘손수 하기’의 체험기가 이 책이다.

 텃밭 가꾸기, 에스프레소 뽑기, 닭 기르기, 기타 만들기, 콤부차 우리기, 벌 치기, 딸에게 수학 가르치기 등을 제 손으로 해나가면서 그는 “뭔가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다 보면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서 일어난다”는 한 매듭에 도달한다. 그 과정에서 만난 수십 명의 DIY의 고수들 또한 그에게 개인 차원을 넘어 우리의 개념으로 확장된 DIO(Do it ourselves)를 꿈꾸게 만든다. 그러곤 한숨짓는다.

 DIY를 ‘슬로 푸드(Slow food)’ 운동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지은이가 세운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먹고 입고 배우고 관리하고 즐기는 삶의 영역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가족이 누리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또 하나는 생명과 행복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물이나 시스템과 더 깊이 소통하며 유대감을 형성하기. 1년 반이 지난 지금, 결과와 평가를 떠나 경험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니 이제는 독자 여러분이 손을 써 이 구절의 타당성을 확인해 볼 차례다.

정재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