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아버지는 최고의 자연이자 스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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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아버지의 오래된 숲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서소울 옮김, 이순
608쪽, 2만5000원

“원 세상, 이렇게 따듯하고 재미있다니! 『아버지의 오래된 숲』, 이런 게 좋은 책일걸? 행복해. 읽는 지금 ㅋㅋ.”

 신간을 읽는 중 문득 친구녀석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이 흔치 않은 몰입의 즐거움을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다. 문자 한 토막도 짧은 서평인데, 이 글은 왜 그런지를 보여주려는 노력이다.

 신간의 부제는 ‘생물학사 100년과 함께한 우리 가족 일대기’. 즉 제2차 세계대전 뒤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가족사이면서도 근·현대 생물학의 변천까지 펼쳐 보이는 두 겹의 구조인데, 이런 저술은 독서시장에 흔치 않다. 그런가 하면 개성 강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서먹한 거리감, 그리고 그걸 메우는 화해와 공감의 노력이 저류를 이룬다.

1966년 메인주립대 동물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오른쪽)와 그의 아버지.

 전반적인 톤은 훈훈하면서도 품위 있는데, 무엇보다 문학적이다. 집안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 꼼꼼히 선택된 단어 하나하나 그리고 내러티브의 틀 모두가 자로 잰 듯해서 ‘이런 게 문학작품’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알고 보니 저자는 미국 생물학계의 기인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그의 많은 저술은 뜸부기에서 박각시나방까지, 겨우살이 동물에서 호수·늪지 묘사에 이르기까지 현장 생태학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벌의 생태를 자본주의 메커니즘과 비교한 첫 책 『뒤영벌의 경제학』(1979년)을 펴낸 뒤 얻었던 그의 별명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현대의 시튼’ ‘20세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버몬트주립대에서 교수직을 제의했을 때 첫 마디가 “숲 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던 그는 1940년 생. 그런 생태주의자 면모는 실은 아버지의 DNA를 물려 받았다. 아버지 게르트는 아마추어 생물학자. 15세 때 놀러 간 베를린자연사박물관에서 맵시벌에 ‘번개’ 맞은 탓인데, 이후 그가 붙여준 학명만 무려 1500종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옛날 생물학, 즉 고전적인 계통생물학에 매달렸고 학위가 없었다. 해외원정까지 나가 곤충을 수집·분류하는 박물학적 즐거움에 온통 매달렸으나 현대 생물학은 이미 유전학·진화생물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더욱이 아내와 함께 벌목 노동으로 호구지책을 해결하면서, 이런 지적 즐거움에 평생을 매달렸다.

 아들이 “아버지 같은 사람은 되지 말자”고 작심했던 건 당연할까. 그렇게 모로 가는 아들 모습에서 아버지는 상처를 받았다. 묘한 건 아버지로부터 멀어지려 발버둥쳤던 아들은 결국 ‘새끼 까마귀’였다는 점이다. 훗날 나이 든 아들이 학위를 딴 뒤 숲 생활을 즐기는 습성, 치밀한 관찰 솜씨 등이 그걸 보여준다.

 유년 시절의 저자와 아버지 모두에게 ‘마법의 공간’이었던 독일의 시골인 한하이데 숲, 이민 온 미국 메인 주의 숲에서 함께 생활한 결과다. 실은 이 책 자체가 아버지에 대한 헌정이다. 퍼즐 맞추듯 아버지의 생애를 재구성해낸 원고에는 살아생전 온전한 화해는 못 이뤘던 부자지간의 정이 묻어난다.

 결국 아버지는 저자가 만난 최고의 자연이자 스승이었던 셈이다. 살펴보니 그의 책 번역본은 4~5종. 『숲에 사는 즐거움-한 생물학자가 그려낸 숲속 생명의 세계』(2005년, 사이언스북스), 『동물들의 겨울나기』(2003년, 에코리브르)…. 모두 보석이고, ‘따듯한 생물학’이라는 확신이 든다. 실은 이런 걸 모두 읽어주는 게 우리시대 중요한 생물학자에 대한 동시대인끼리의 공감과 예의가 아닐까.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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