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화가 이중섭의 삶과 그림 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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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시대의 천재화가 이중섭. 그에 대해서는 작품보다 더 많은 관심이 투여됐던 것이 파란만장했던 삶이었지만, 그것조차 온전하게 정리된 것이 제대로 없었다. 인구에 회자하는 만큼 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중섭에 대한 책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겨우 70년대 후반에 시인 고은 님이 정리한 이중섭 전기 〈화가 이중섭〉(민음사)과 지난 2월 출간한 국립현대미술관장이며 미술평론가인 오광수 님이 그의 삶보다는 미술 작품을 집중 조명한〈이중섭〉이 고작이다.

화가 이중섭의 생애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가 이중섭이 유복자라는 사실. 아직까지 이중섭의 삶에 대해 유일한 단행본으로 남아 있는 고은 님의 이중섭 전기에도 그렇게 기술돼 있다. 그러나 이번에 미술평론가 최석태 님에 의해 새로 나온 〈이중섭 평전〉(돌베개)에서는 이중섭이 다섯 살 되는 해까지 이중섭의 아버지 이희주가 살아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이중섭의 형 이중석이 결혼할 당시까지 이들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밝혀낸 것이다. 이는 이중석의 아들 이영진이 그의 어머니에게 전해 들은 증언으로부터 확인된 사실이다.

이중섭의 주요 활동이 한국 화가의 작품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식민지 때 이뤄졌다는 까닭에 이중섭에 관한 남은 기록은 넉넉하지 않다. 이중섭을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도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해 정확한 근거 자료를 가지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이같은 한계를 딛고 이중섭의 삶을 본래 모습에 가깝게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간간이 있어왔고, 이번에 나온〈이중섭 평전〉은 이같은 세간의 관심에 부응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미술평론가 최석태씨는 이중섭과 관련한 자료를 찾고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꼬박 지난 5년을 투자했다. 그 동안 이중섭의 조카 이영진 님과 그 가족을 수십 차례 만났으며, 그의 친구이며 이중섭기념사업회장인 시인 구상 님도 여러 차례 만나 갖가지 증언을 얻어냈다. 또 이중섭의 초등학교와 대학과정 동창생인 김병기 님을 만나는 행운도 있었다고 후기의 첫 머리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중섭이 태어난 해인 1916년 무렵부터 책의 첫 장을 시작, 56년 9월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중섭의 삶을 재구성해냈다. 그의 삶의 주요 시점마다 그가 내놓았던 작품을 함께 원색 도판으로 제시해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 창작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화가의 고뇌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스물다섯 살의 젊은 이중섭이 열렬히 사랑했던 일본 여학생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40년부터 43년까지 4년 동안 보냈던 엽서 그림 1백여점 중 주요 작품 40여점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 엽서 그림들을 단순한 연애편지로 취급할 수는 없다. 비록 대작은 아닐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것이므로 이중섭의 미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들"이라고 강조하며 작품 하나 하나를 꼼꼼히 분석, 해설해냈다. 이를 통해 이 엽서 그림이야말로 이중섭이 "높은 경지의 화면 구성 능력과 선묘 솜씨 등을 몸에 익히게 된" 디딤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밖에도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식민지 시대의 유일한 민족미술 단체인 '조선신미술가협회'등의 자료를 분석, 이쾌대 문학수 등과 함께 한 이중섭의 협회 활동을 조명해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이중섭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가 이중섭에 대한 연구는 무엇보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 까닭이다. 그러나 이 책과 같이 한 인물의 삶에 대한 올바른 복원이야말로 그 인물을 바르게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기에, 이 책에 갖는 관심을 거둬들일 수 없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무엇보다 이중섭이라는 인물이 많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자 하는 일반인들의 요구를 해결할 수 있는 미술관 하나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은 이중섭의 삶과 그림을 종합적으로 감상하고자 하는 일반 독자들에게 하나의 평전이자 화집으로 남을 것이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화가 이중섭에 관한 책들
* 이중섭 평전 (최석태 지음, 돌베개 펴냄)
* 화가 이중섭 (고은 지음, 민음사 펴냄)
* 이중섭 (오광수 지음, 시공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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