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라치’ 활동무대 경기도 → 서울 대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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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A아파트 입구. 카메라를 들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려는 20대 남녀 3명과 경비원 김모(59)씨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들은 이른바 ‘비파라치(비상구+파파라치)’였다. 포상금을 받기 위해 아파트 비상구나 계단 등 피난시설을 훼손하는 불법행위를 찾아내 신고한다. 이들을 아파트 밖으로 쫓아낸 경비원 김씨는 “올해만 두 번 적발돼 과태료를 물었다”며 “다음에 또 오면 빗자루질을 해서라도 쫓아내겠다”고 말했다.

 최근 강남 일대에 비파라치가 급증하고 있다. 강남구의 경우 지난 1월 10건에 불과했던 신고 건수가 지난달엔 89건으로 9배 가까이 늘었다. 송파구도 같은 기간 11건에서 85건으로 증가했다. 강남소방서 측은 “강남 지역에 고층 빌딩이 밀집돼 있어 비파라치가 몰리는 것으로 안다”며 “이 때문에 최근 강남구 내 아파트 관리인들의 항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 경기도의 신고 포상금이 모두 소진돼 지난 8월 지급을 중단하자 그 지역 비파라치들이 서울, 특히 강남으로 몰려든 것 같다”고 추정했다. 경기도는 올 상반기까지 총 2774건의 신고가 접수돼 서울(1995건)을 제치고 비파라치들의 최대 활동 무대였다.

 비파라치 제도는 비상구를 확보해 화재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방방재청이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비상구 문을 잠가놓거나 문 앞에 짐을 쌓아둬 비상시 이용할 수 없게 만든 경우가 주된 적발 대상이다. 위반 행위를 사진으로 찍어 각 소방서에 신고하면 포상금 5만원을 받을 수 있다. 신고당한 업소나 건물주는 30만~50만원을 물어야 한다.

 비파라치들의 신고가 잇따르면서 강남 지역 아파트관리사무소와 빌딩 관리인들 사이에 비상이 걸린 상태. 강남구 역삼동 B빌딩 주차관리원 김모씨는 “두 달 전 출입구 잠금장치가 빠져 있는 사실이 소방서에 신고돼 과태료를 물어야 했다”며 “5층 이하 건물은 따로 관리인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파라치들의 집중 표적이 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송지혜·김영민 기자

◆비파라치=비상구와 파파라치를 합성한 신조어다. 비상구 또는 방화문을 폐쇄하거나 복도, 계단, 출입구 등 피난시설을 훼손하는 행위를 사진으로 찍어 관계당국에 신고해 포상금을 받는 사람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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