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결위 열자마자 정회 … 국회 올스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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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이 23일 대(對)여 ‘전면전’을 선언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무효화 투쟁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 심의 등 국회 일정의 전면 중단도 재확인했다. 야권 공조체제도 재가동키로 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소속 의원 50여 명과 규탄대회를 열고 “ (강행처리는)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의 의회 쿠데타”라며 “한·미 FTA 비준 전면 무효화 투쟁에 들어간다”고 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정신적으로 FTA가 통과됐다고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며 “법률적·정치적·정신적으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손 대표와 의원들은 FTA 비준을 막지 못한 데 대한 ‘사죄’의 뜻으로 취재진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했다.

 민주당은 대여 압박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타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박희태 국회의장과 정의화 부의장,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황우여 원내대표는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또 26일엔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민주노동당 등 다른 야당 등과 함께 대규모 집회를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헌법재판소에 비준 위헌 소송을 내는 법정 투쟁도 병행키로 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1박2일간 계속됐던 민주당 의원총회에선 당초 ‘지도부 총사퇴’ ‘소속 의원 전원 사퇴’ 등 대응방안이 논의됐다. 하지만 “극단적인 방법은 피하자”는 여론이 우세해지면서 다소 수위가 조정됐다고 한다. 고려해야 할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야 의원들은 내년도 예산안에 지역구 예산을 충분히 반영해 처리한 뒤 고향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내년 총선 준비를 위해서다.

 하지만 민주당의 국회 보이콧으로 일정이 차질을 빚게 됐다. 이날 오전 열린 예결위 계수조정소위는 야당 측의 불참으로 열자마자 곧바로 정회됐다. 기획재정위 등 6개 상임위원회 회의도 열지 못했다. 겨우 문을 연 행정안전위원회 회의는 민주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반쪽’으로 진행됐다.

 한나라당은 일단 민주당에 유화책을 쓰는 모습이다. 홍준표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하고 “민주당이 요구한 FTA 후속대책은 100% 시행하겠다. 추가 대책에 대해 대통령도 고민 중”이라며 “곧 청와대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예산안에 대해서도 “여야가 합의처리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야당의 체면을 세워줌으로써 국회 복귀의 명분을 주겠다는 의도다.

 민주당 내에서도 반FTA 투쟁을 ‘총선용 장기과제’로 돌리자는 기류가 나오고 있다. 손 대표가 “투쟁을 통해 재협상이 관철되지 않으면 내년 총선 승리를 통해서라도 실현하겠다”고 한 건 이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것이다. 당장 얻을 것 없는 투쟁보다 총선 승리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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