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건 가족·친구 … 일본 ‘기즈나 소비’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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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장기 침체에 허덕이는 일본 경제에 올 연말 새로운 사회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기즈나(絆) 소비’다. 해석하자면 유대감이나 친한 사람들끼리의 정(精)을 위해 돈을 쓰는 현상이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전자판은 23일 “올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연말연시를 가족이나 친척, 친한 동료들과 풍족하게 보내려는 소비가 늘고 있다”며 “이달 초에 시작된 백화점이나 대형 수퍼의 소비 형태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경우 보통 11월 중순에서 12월 중순에 걸쳐 친지, 지인들에게 ‘오세이보(お歲暮)’란 선물을 보낸다. 올해의 경우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20%가 넘는 주문 예약이 백화점·수퍼에 몰리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비싼 선물을 보내기보다는 싼 선물을 여러 사람에게 보내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신년에 먹는 일본 특유의 명절 음식인 ‘오세치’ 요리도 고가 상품 위주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편의점 로손의 경우 지난해 대비 60%, 세븐일레븐은 40%의 매출 증가가 예상되고 있 다. 다카시마야(高島屋) 백화점을 찾은 40대의 한 여성은 “오세치 주문은 3년 만”이라며 “대지진을 겪은 만큼 내년 신년 초하루에는 남편과 단 둘이서 밝은 기분으로 다소의 사치를 즐기고 싶어 5만 엔짜리 오세치를 주문했다”고 말했다.

 또한 각종 송년회 모임도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전국 유흥업소연맹에 따르면 동우회·동창회 등 각종 명목의 송년회 예약이 예년에 비해 30%가량 늘고 있다. 연맹 관계자는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그동안 만남이 뜸했던 이들을 만나 서로의 유대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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