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삼성전자 파워 대해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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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초우량기업, 삼성전자가 올해 순익만 5조원 이상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금액은 삼성전자가 지난 30년간 벌어들인 돈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많다. 삼성전자는 사업구조도 건실해졌다. 국제시세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큰 반도체부문 비중을 줄인 대신 멀티미디어와 정보통신부문 비중을 늘려 사업기반을 다졌다. 양적·질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도 지속적인 구조조정으로 몸집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러나 재계·학계와 정부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성공이 자칫 한국경제의 어두운 면을 가리는 착시현상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성공사례와 과제 등을 집중 분석해 본다. <편집주>

‘삼성의 독주 시대-.’

요즘 재계 모임에 가면 이곳저곳에서 이렇게 수군거리는 말을 자주 듣는다. 올들어 재계 1위인 현대가 내우외환으로 삐걱거리는 가운데 삼성은 조용하면서도 활기찬 약진을 거듭하면서 경영실적과 관련한 각종 신기록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올해 삼성그룹의 화려한 경영 성적표를 들여다보자. 먼저 45개 全 계열사의 흑자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총 매출은 1백10여조원, 세후 이익이 9조여원에 달할 전망이다.

삼성에 대한 증시의 평가도 여타 4대 그룹과 비교가 안된다. 삼성의 상장사 시가총액은 상반기 현재 69조여원으로 현대·LG·SK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할 정도다. 삼성의 질주가 이렇게 빨라지자 외환위기 이후 팽배했던 대기업에 대한 비판시각도 궤도수정을 요구받기에 이르렀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되뇌던 정책 관료들도 올들어 ‘대기업·중소기업의 쌍두마차론’을 입에 자주 올리는가 하면 재계·언론계에서도 ‘삼성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며 벤치마킹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약진하는 삼성의 선봉에는 ‘삼성전자’라는 초우량기업과 전자 관계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삼성이 내세우는 세계 시장 점유율 1등 제품 12개, 5위권 제품 21개 가운데 대부분을 전자 관련 제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학계와 정부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성공이 자칫 한국경제의 어두운 면을 가리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함께 고조되고 있다. ◇약진하는 거대 기술집단=삼성전자의 올해 매출은 32조원, 당기순이익은 5조여원으로 그룹 매출·순익의 절반 가량을 점한다.

말이 5조원이지 이는 삼성전자가 1969년 창사 이후 벌어들인 돈을 다 합한 것보다 많은 금액이다. 올해 낼 법인세가 1조원 이상일 것이 확실해 이 분야에서도 신기록감이다. 해외 유명기업들도 매출액 대비 10%를 훨씬 웃도는 순익을 내는 곳은 흔치 않다<그림 참조>
. 삼성전자의 양적 성장만큼이나 사업구조의 질적 성숙 또한 괄목할 만하다. 국제시세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많은 반도체부문의 비중을 줄인 대신 멀티미디어와 백색가전의 비중을 크게 늘려 안정적 사업 기반을 다져 나가고 있는 것. 삼성전자의 올해 예상 매출액 중 반도체의 매출·순익은 8조원·2조4천억원으로 여전히 가장 많다. 하지만 그 비중은 전체 매출의 3분의 1(매출 기준)
수준으로 과거보다 급격히 줄어들 전망이다. 대신 정보통신과 디지털가전제품의 비중이 각각 20%, 40%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제1차 국내 반도체산업 절정기인 지난 95년의 경우 16조원 매출 가운데 컴퓨터를 포함한 반도체의 매출이 8조9천억원으로 55%에 달했고, 정보통신은 2조8천억원(17%)
, 멀티미디어와 백색가전이 4조5천억원(28%)
이었던 데 비하면 반도체 비중은 상당히 줄어든 것이다. 특히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와 휴대폰 등은 반도체 다음 세대를 이끌 수출 효자 품목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최근 IDC재팬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LCD 제품의 삼성전자 세계시장 점유율은 20%를 처음 넘어서면서 1위 자리를 더욱 공고히 했다. 5년 전만 해도 이 분야는 일본 업체들의 독무대였다. 이처럼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하면서도 몸집은 오히려 줄었다는 점도 삼성전자의 미래를 밝게 해 주는 한 요인. 5년 전에 비해 매출과 이익은 두 배씩 늘어난 반면 꾸준한 구조조정과 인원감축으로 종업원 수는 5만7천명에서 3만9천여명으로 3분의 2로 줄어들었다.

◇삼성전자의 앞날은=전자산업에 목을 매다시피하는 한국경제가 삼성전자의 미래에 대해 갖는 관심은 클 수밖에 없다. 일단 중기 전망은 밝게 나오고 있다. 모건 스탠리 등 해외 전문기관들은 적어도 향후 2년간 반도체 경기가 좋을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값이 불안한 가운데서도 상승세를 지속하는 점도 고무적이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64메가D램 고속제품의 국제시세는 지난 3월 한 개당 5.93달러를 저점으로 7월 초 9달러에 육박했다. 128메가D램도 개당 18달러를 넘어서는 등 동반상승하고 있다. 데이터퀘스트·IDC 같은 권위 있는 국제조사기관들은 올해 하반기에 반도체 수요가 늘어 일부 공급부족 사태까지 빚어지면서 64메가D램은 9∼11달러, 128메가D램도 16∼19달러로 현재의 높은 가격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도 최근 낙관적 전망을 조심스레 피력한 바 있다. 그는 한 시사 월간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정보사회가 진전될수록 기가제품·복합칩 등 차세대 반도체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면서 “앞으로 수급상황에 따라 다소 기복은 있겠지만 우리가 경쟁우위를 갖고 있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사업의 특성상 반도체 사업의 전망은 좋다”고 말했다.

◇우려되는 착시현상=하지만 삼성전자의 약진이 오히려 한국경제의 앞날을 지나치게 낙관하게 하는 역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도 근래 자주 제기된다. 지난 95년 반도체 산업의 초호황으로 삼성은 물론 한국경제 전체가 성급히 ‘샴페인’을 터뜨렸다가 반도체값 폭락·외환위기라는 엄청난 재앙을 준비 없이 맞았던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다. 올해 삼성전자의 예상 수출액은 1백81억 달러로 우리 나라 전체 수출액 가운데 무려 12%에 달한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가 나올 만도 하다. 한화증권 윤형호 리서치팀장은 “95년 반도체 호황이 사실상 내리막길이던 국내 경제의 실상을 장밋빛으로 호도한 측면이 많다”면서 너무 들떠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업종별 경기를 들여다보면 반도체·자동차 등 일부 호황업종과 달리 어려움을 겪는 업종이 여전히 많다.

대우경제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경기등고선을 통한 산업경기의 확산도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후 빠른 경기 상승세에도 업종간 경기의 양극화로 체감경기가 지표경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경공업을 비롯해 상당수 국내 주요 업종의 생산규모가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반도체 산업의 연관산업 생산유발 효과(1.3)
가 제조업 평균(1.95)
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점도 업종별 경기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으로 지적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리사주·삼성 계열사 지분을 모두 합해 봐야 20%대여서 현재로선 경영을 잘하는 것이 적대적 인수합병(M&A)
을 막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털어놓았다.

홍승일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 <hongsi@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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