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가방서 최루탄 꺼내 ‘펑’ … 분말 다시 쓸어담아 의장석에 뿌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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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노당 김선동 의원은 21일 오후 3시5분쯤 검은색 노트북 가방을 들고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본회의장 앞에서 경위들이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느냐”고 물어보자 김 의원은 “의정 자료”라고 둘러댔다고 한다. 김 의원은 의장석 밑 발언대 앞을 서성거리다 갑자기 가방 안에서 최루탄을 꺼내 뇌관을 터뜨렸다. 그러자 ‘펑’ 소리와 함께 최루가스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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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상황을 목격한 자유선진당 류근찬 의원은 “김선동 의원, 독하더라. 온몸에 최루 분말을 뒤집어쓴 상황에서 재채기도 안 하고, 땅에 흩어진 분말을 두 손으로 주워 통에다 담더니 정의화 부의장을 향해 던졌다”고 전했다. 민주당 박기춘 의원은 “자기 발밑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김 의원은 연기를 다 마시면서 단상을 붙잡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한마디로 ‘자폭’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김 의원이 가방을 메고 의장석으로 접근할 때 같은 당 권영길 의원이 가방을 툭툭 치면서 내용물이 뭔지 아는 표정을 짓더라”며 “민노당이 조직적으로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의 최루탄 투척은 1966년 9월 22일 당시 한국독립당 김두한 의원의 인분(人糞) 투척 사건 이후 최악의 본회의장 테러라는 게 한나라당의 지적이다. 당시 김 의원은 대정부 질의 도중 사카린 밀수 사건에 항의한다며 정일권 국무총리와 장관들을 향해 인분이 섞인 오물을 던졌다.

 한나라당은 김 의원의 ‘최루탄 폭력’에 형법상 ‘국회 회의장 모욕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형법은 국회 심의를 방해 또는 위협할 목적으로 국회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모욕 또는 소동을 일으킨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면책 특권은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만 해당된다.

 김 의원의 행동에 대해 민주당에서조차 “몸으로 막는 것은 몰라도 최루탄을 터뜨린 것은 심했다”(박기춘 의원)는 의견이 나왔다. 반면 민노당 우위영 대변인은 “매국행위에 대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최루탄을 터뜨린 뒤 기자들과 만나 “이토 히로부미를 쏜 안중근·윤봉길 의사(윤 의사는 착각인 듯함)의 심정이었다” “지금 심정으로는 성공한 쿠데타라고 희희낙락하는 한나라당 체제의 국회를 폭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보좌진에게 “감옥 갈 지 모르지만 일을 열심히 하라”고 했다고 한다.

 ◆김선동 의원은=김 의원은 지난 4월 27일 치러진 전남 순천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민주당은 야권 연대를 위해 당 소속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민노당에 양보했고, 민노당은 김 의원을 공천했다. 전남 고흥 출신인 김 의원은 고려대 물리학과 85학번의 운동권 출신이다. 고려대 총학생회 간부로 있던 88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서울 미국문화원을 점거해 구속됐다. 89년 울산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에서 근무한 것을 시작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현대중공업과 아시아자동차, 금호타이어의 사내 하청업체에서 족장공, 용접공, 몰드교체담당을 했다. 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민승리 21’ 후보로 출마한 현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의 선거를 도우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2006년엔 민노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국회 외통위 소속인 그는 지난 2일엔 같은 당 강기갑 의원과 함께 회의장 내 CCTV를 신문지로 가리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야당이 비준안 처리를 막기 위해 외통위 회의장을 봉쇄하는 과정에서 국회 경위와 충돌했고, 국회 경위는 전치 4주의 진단을 받고 입원했었다.

이철재·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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