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금융업계 ‘주가군’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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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주룽지

‘주룽지(朱鎔基) 사단’이 중국 금융업계를 장악했다. 지난달 말 단행된 금융감독기구 인사에서 주 전 총리가 키운 금융맨들이 핵심 포스트를 대거 차지했다. ‘주(朱)패밀리 군단(주가군·朱家軍)의 전성시대’ 다.

 이번 인사에서 상푸린(尙福林) 증권감독관리위(증감위) 주석이 은행업감독관리위(은감위) 주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궈수칭(郭樹淸) 건설은행장이 증감위 주석으로, 샹쥔보(項俊波) 농업은행 행장이 보험감독관리위(보감위) 주석으로 각각 ‘승진’했다. 모두 주 전 총리가 키운 ‘주가군’ 멤버다.

 상푸린 주석은 주 전 총리의 애제자다. 주 전 총리는 1993년 인민은행장에 임명되자마자 자금계획사(司·국에 해당)에서 일하던 상푸린을 행장비서로 발탁했다. 상푸린은 당시 경제계의 최대 문제였던 ‘삼각채(三角債 )’ 해결에 성공했고, 이듬해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주 전 총리는 2001년 4월 상푸린 부행장을 증감위 주석으로 발탁하면서 그 자리를 궈수칭에게 넘겼다. 주룽지는 93년 이후 국가경제체제개혁위에서 일하던 궈수칭을 눈여겨봤고 줄곧 관리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감위 주석으로 임명된 샹쥔보와 주룽지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초 상업은행에서 부정부패 사건이 잇따라 터진다. 주 전 총리는 심계서(審計署·감사원에 해당) 부서장으로 일하고 있던 샹쥔보에게 맡겼고, 이를 계기로 샹쥔보는 이듬해 인민은행 부행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약 3000억 달러의 국부펀드를 주무르는 중국투자공사(CIC)의 수장 인 러우지웨이(樓繼偉) 회장 역시 ‘주 패밀리’소속이다. 그는 주룽지가 88년 사회과학원에서 상하이 시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 데리고 갔을 정도로 신임이 깊다.

 ‘주 패밀리’의 맏형은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왕치산(王岐山) 부총리다. 왕 부총리는 ‘리틀 주룽지’로 불릴 정도로 주룽지의 측근 중 측근이다. 94년 당시 인민은행 행장을 겸하던 주룽지는 건설은행 부행장이었던 왕치산을 인민은행 부행장으로 끌어왔다. 전문가들은 왕 부총리가 차기 인선에서 총리직으로 오르지는 못하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금융 분야의 장악력은 유지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주가군의 특징은 유학 경험이 없는 국내파라는 점이다. 이들은 시장의 자율보다는 개혁에 중점을 둔다. 삼각채 개혁, 보유 외환 투입을 통한 상업은행 부실 문제 해결, 상업은행 부정부패 척결, 비(非)유통주 개혁 등 일련의 금융권 개혁이 모두 이들 주가군의 작품이다.

 주가군의 전면적 등장은 개혁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불 것임을 예고한다. 중국 금융업계가 주가군의 행보에 긴장하는 이유다.

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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