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도둑 폐경 … 적절한 치료 받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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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훈 아산 미래산부인과 원장은 “폐경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질환으로 인식해야 한다. 적절한 대처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조영회 기자]

수년 전 30대 후반의 환자가 병원을 방문했다. 환자는 약 1년 전 갱년기 진단을 받은 후 불규칙하던 생리가 한참 동안 없다며 내원했다. 당연히 갱년기, 폐경기를 의심하며 초음파 검사를 하던 중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환자는 30대 중반에 결혼해 아직까지 아이가 없는 상태였다. 의아했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임신 진단을 내리고 지난번 갱년기 검사에 무언가 오류가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이후 환자는 남은 8개월여의 임신 기간을 잘 보내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

시간이 흘러 2011년 9월 어느 날. 40대 초반이 된 그 환자는 모유 수유를 끊었지만 생리가 없다며 다시 내원했고, 초음파 검사에서 자궁은 전혀 생리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설마 하는 마음이었지만 확인을 위해 갱년기 호르몬 검사를 해보니 놀랍게도 환자는 갱년기를 한참 지나 이미 폐경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여성들은 평생 동안 배란시키며 소진시킬 난자를 약 200만개 정도 가지고 태어난다. 역으로 유추해보면 인생의 마지막 배란이었을지 모를 그 난자가 임신에 성공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새삼 놀라웠다. 이내 가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감동을 느꼈다. 현재 그 환자는 두 살 배기 아이와 너무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병원에서는 갱년기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오늘은 너무나 젊은 나이에 인생의 전환기라 불리는 갱년기를 맞이하는 환자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는 여성들의 삶에서 누구나 겪지만, 너무나 심각한 생물학적 변화를 동반하는 병적인 상태로 규명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누구나, 당연히 겪는 일인걸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방치하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갱년기는 사람의 삶, 특히 여성의 삶을 황폐화 시키는 분명한 질환이다. 폐경은 나 자신도 모르게 내 삶을 갉아먹는 질환중의 질환이며 산부인과 의사들은 폐경을 ‘소리 없는 도둑’ 이라 부른다.

폐경 이후의 신체 변화는 당연히 여성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장기들에서 주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골다공증을 동반하는 골격계, 피부, 질 점막과 성기능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누구나 20대 중반에 신체 기능이 최고조를 이루며 이후 노화가 진행된다. 하지만 갱년기에 도달해 여성 호르몬이 감소하게 되면 위에서 열거한 장기들의 노화가 빨라지게 된다. 이렇게 5~10년이 지나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노화가 진행되어 버린다.

이런 병폐는 40세 이전에 폐경이 오는 조기 폐경 환자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50대가 되면 이미 노화가 상당히 진행돼 노년기의 생체기능까지 진행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30대이든 40대이든, 아니면 50대이든 갱년기가 의심되고 폐경 진단을 받게 되면 꼭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합병증이 심각한 질환은 아니지만 삶의 질을 결정하는 상당히 중요한 질환임을 인식해야 한다. 평균 연령이 점차 늘어나는 현대사회. 여명이 길수록 이에 대한 대처와 적절한 치료가 꼭 필요하다.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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