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가 학교를 상위 5% 명문으로 … 영국 교육계의 ‘퍼거슨’ 그랜트 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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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 있는 로버트 클라크 스쿨에 다니는 오드리 본 에녹(17·여)은 요즘 수업이 끝나면 SAT(미국 수학능력시험)를 준비한다. 11학년(한국의 고2)인 그는 내년 9월 미국 하버드대 진학을 준비 중이다. 본 에녹은 “하버드에 도전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 그는 상습적으로 학교를 빠지는 문제 소녀였다. 하지만 로버트 클라크 스쿨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공립학교인 이 학교가 본 에녹에게 기적을 가져다 준 비결은 뭘까. 학교가 있는 바킹 앤드 다겐햄 자치구는 백인 노동계층과 유색 인종 거주 지역이다. 1990년대 초반 영국 공립학교 가운데 학업 성취도에서 꼴찌였던 이 학교는 2007년 상위 5% 학교로 뛰어오르면서 이들 지역 학생은 대학 진학이라는 꿈을 갖게 됐다.

 이런 변화의 중심엔 폴 그랜트(54·사진) 교장이 있다. 그는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처럼 2009년 학교를 바꾼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이름 앞에 ‘Sir(경·卿)’가 붙는 명예를 얻고 기사 작위도 받았다.

 그가 부임했던 97년만 해도 이 학교는 전형적인 슬럼 지역 학교였다. 전교생의 10% 정도가 상습적으로 결석했다. 2001년 졸업생이자 이 학교 과학주임 교사인 데런 스미스는 “폭력이 난무했던 살벌한 학교였다”고 했다.

 그랜트 교장은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방치하지 않았다. 지켜야 할 규율을 정했다. 수업 방해 행위, 폭력 등의 문제가 벌어지면 교장과 교사들이 쫓아다니며 다독이고 문제를 바로잡았다. 그 다음엔 학교 문화를 바꿨다.

그랜트 교장은 “잘한 일은 적극 칭찬하고, 뭔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구성원들이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읽고 쓰는 능력을 개선하자는 목표를 설정하고 학생별로 일정표도 만들어줬다. 뒤떨어지는 학생에겐 상급 학생이나 교사를 멘토로 붙여줬다.

 그랜트 교장은 교사들이 팀을 이뤄 역할을 분담토록 했다. 생활지도 담당교사 로라 조시아는 “교장은 비전을 제시하며 공유하자고 했다”며 “교사들이 ‘내 얘기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런던=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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