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선심예산 11조, 국회서 끼워넣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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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15개 상임위원회(정보위는 비공개)가 내년도 정부 예산안 예비심사에서 모두 11조4923억원의 예산을 증액한 것으로 21일 집계됐다. 증액 규모는 당초 8조원 정도로 예상됐지만, 예산안(일반·특별회계) 외에 정부기금에서 보이지 않게 늘린 액수까지 더해 3조원가량 더 늘었다.

 2012년도 정부 예산안(326조1000억원)이 상임위 심사를 거치면서 깎이는 대신 오히려 SK텔레콤의 시가총액(약 12조원)만큼 더 불어난 것이다. 이는 지난해 상임위 예비심사 때의 증액 규모(12개 상임위, 3조3420억원)의 3.4배에 달하며, 4대 강 살리기 사업 정부예산(14조원)의 82%에 해당한다.

 익명을 원한 기획재정부 예산실 고위 관계자는 “상임위가 늘린 액수는 최근 10년 내 최대 규모”라며 “이를 반영하려면 그만큼을 다른 데서 깎거나 국채를 발행해 빚을 내는 방법밖에 없는데 현재의 재정 상황으론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1일 가장 늦게 예비심사를 마친 교육과학기술위원회도 민주당이 요구한 ‘반값 등록금’ 공약 예산으로 4000억원을 증액했다. 또 시·도 교육청의 무상급식 지원 예산의 경우 지방재정교부금에 맡길 특성화고 장학금을 정부 예산에서 계속 지원하는 방식으로 1264억원을 배정했다. 당초 민주당은 3조원(등록금 2조·무상급식 1조)을 요구했지만 상임위의 무분별한 예산 증액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따가워지자 규모를 낮춘 것이다.

대신 민주당은 포항공대 방사성가속기 사업예산(정부안 850억원)을 ‘형님(이상득 의원) 예산’이라며 400억원 감액시켰다. 또 예결위에서 국제 재정회계 기준인 정부 총지출 방식으로 상임위 증액분을 다시 산정한 결과, 예비심사보고서에선 숨겨져 있던 2조6000여억원이 새로 드러나기도 했다. 당초 3조5321억원을 늘렸다고 발표한 국토해양위는 주택 구입·전세자금 지원(6500억원) 등 국민주택기금에서 8900억원을 추가로 증액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예결위 관계자는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친 정부 예산안이 주목을 많이 받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는 기금을 통해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게 관행”이라고 말했다.

 상임위의 ‘예산 뻥튀기’는 이미 예고된 결과다. 여야가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4월 총선에서 복지공약 예산은 물론,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을 넣겠다고 공언해 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놓고는 여야가 극한 대치 중이면서도 예산안 심사는 ‘사이 좋게’ 마친 셈이다. 정갑윤 예결특위 위원장은 “ 12조원 가까운 예산을 어떻게 밀어 넣느냐”며 “재정 건전성을 포기하자는 얘기”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인천대 옥동석(경제학) 교수는 “예산 뻥튀기를 없애려면 미국·유럽의 의회처럼 각 상임위별 증액 한도를 미리 정해주는 ‘예산 상한제(budget ceiling)’를 도입해야 한다”며 “증액 한도가 미리 정해지면 한도를 넘길 때는 다른 사업에서 감액해 재원을 마련하는 ‘페이고(Paygo)’ 원칙도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효식·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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