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스페셜 - 화요칸중궈(看中國)] ‘성년 우정’ 한·중 사이엔 7개의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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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로 연평도 피격 1년을 맞는다. 북한의 도발은 말할 것도 없지만 중국이 보여준 태도 또한 충격이었다. 내년에 수교 20돌 성년을 맞는 한·중 관계가 ‘경제는 뜨겁지만 외교는 미지근하며 안보는 냉랭하다(經濟熱 外交溫 安全冷)’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도 한·중 관계를 ‘불시에 암류(暗流)가 흘러 넘칠 수 있는 관계’로 본다. 낙관할 상황이 아니란 것이다. 국내 전문가 7명이 머리를 맞대고 3년에 걸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섬세한 관리가 필요한 영역을 영유권 분쟁에서 가치관까지 7개로 설정하고 대응책을 제시했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한·중 관계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은 무얼까. 이번 연구를 기획한 정재호 서울대 교수는 “한·중 관계에 꽂혀 있는 가장 굵은 가시는 북한”이라고 말한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거치며 드러난 중국의 북한 편향적 태도가 ‘불편한 미래’를 시사한다는 것이다. 신상진 광운대 교수는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중 갈등은 북핵을 포함한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한 대응, 탈북자 처리, 북·중 경제 협력에서 주로 표출된다고 평가한다.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상호 전략적 인식을 쉽게 바꿀 수는 없어도 최소한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 중국을 설득할 다양한 논리를 개발하고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신 교수는 주장한다.

 북한과 맞물린 한·중 관계의 두 번째 걸림돌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이견이다. 통일 시나리오는 현상 유지, 흡수 통일, 무력 통일, 합의 통일 네 가지를 상정할 수 있다. 최명해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반도에서 미국과 직접 대면하는 것을 꺼리는 중국의 입장을 감안할 때 중국이 한국 중심의 흡수 통일이나 무력 통일은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실제로는 현상 유지를, 그러나 마지못해 합의에 의한 통일을 인정하는 수준이란 평가다. 그러나 중국이 공식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힌 통일 방식인 합의 통일은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다. 따라서 한국으로선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에 우호적이거나 최소한 중립적인 국가’라는 믿음을 중국에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최 연구원은 말한다.

 한·중 관계의 세 번째 장애는 한·미 동맹을 둘러싼 갈등이다. 중국은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첫날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한·미 동맹은 지나간 역사의 유물’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1992년 한·중 수교 교섭 당시 한·미 동맹에 대해 중국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중국 태도 변화의 배경에는 북한 도발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봤던 한·미 동맹이 점차 중국 포위의 기능을 띠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는 한국이 미국을 대해온 수준만큼을 중국이 요구하게 될 것으로 정재호 교수는 전망한다. 따라서 중국이 북·중 정상회담을 내정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한국도 한·미 동맹이 전적으로 주권 영역에 속하는 것임을 기회 될 때마다 천명해야 하며, 한·미 동맹의 균형된 발전을 위한 한국의 부단한 노력이 중국과의 관계도 함께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정 교수는 분석한다.

 한·중 관계의 네 번째 걸림돌은 아직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 어떤 이슈보다도 민감한 영토 분쟁을 들 수 있다. 여기엔 이어도(중국에서는 쑤옌자오(蘇岩礁)라 부름)와 간도가 포함된다. 중국 국가해양국은 2007년 “쑤옌자오가 중국 대륙 해저의 일부분이며 중국 영토”라고 했다가 한국의 항의를 받고 삭제했다. 한국이 이어도에 종합해양과학기지를 설치한 것을 두고 한국이 중국의 영토 주권을 침범했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다. 또 간도 문제는 동북공정(東北工程)과 같은 역사 왜곡과 연결되어 양국 국민의 감정을 악화시킬 수 있는 사안이다. 김애경 명지전문대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건국 이후 23건의 영토 분쟁 중 6건에서 무력을 사용했다. 따라서 한국은 영토 문제와 관련해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게 절실하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다섯 번째로 영토 문제처럼 국민 감정을 크게 자극할 수 있는 것으로 역사 논쟁이 있다. 2002년부터 추진된 동북공정은 수교 이후 줄곧 중국에 우호적이던 한국인의 시각을 180도 바꿔놓았다. 한국인은 동북공정을 중국의 ‘한국 고대사 빼앗기’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에서 ‘중국 위협론’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 동북공정을 둘러싼 갈등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이 시작된 청사공정(淸史工程)의 편찬 결과에서 조선이 청나라 ‘속국(屬國)’으로 기술될 경우, 한국의 엄청난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역대 정사에서 한반도의 왕조는 모두 ‘외국’으로 기술됐으나, 1928년 출간된 ‘청사고(淸史稿)’에서 처음으로 조선이 속국으로 분류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중 간 여섯 번째 갈등 영역은 소프트파워에 대한 것이다. 조영남 서울대 교수는 중국의 강대국화 전략과 한국의 국제 지위 제고 노력을 통해 양국 간 규범 및 가치관 충돌이 야기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중국은 서구 가치와는 상이한 ‘중국 모델’의 확립과 확산을 통해 국제사회의 새로운 선도국가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반면, 한국은 경제발전과 정치 민주화를 함께 이뤄낸 ‘한국식 발전 모델’을 강조한다. 조 교수는 ‘차이’가 곧 ‘충돌’로 이어지지 않게 ‘관리’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한·중 간 ‘불편한 관계’가 유발될 소지가 있는 영역은 경제와 통상이다. 양국 간 교역액의 폭발적 증대 이면에는 무역구제 제도를 통해 서로를 가장 빈번히 제소했다는 측면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주장환 한신대 교수는 중국의 경쟁력 강화로 인해 한·중 무역구조가 이미 ‘상호 보완’에서 ‘경쟁’ 국면으로 들어섰기 때문에 통상 마찰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한다. 불필요한 마찰은 줄이되 불가피한 마찰에 대해선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고 주 교수는 주장한다.

 ‘두꺼운 얼음은 하룻밤 사이에 언 게 아니다(氷凍三尺 非一日之寒)’는 말이 있다. 한·중 간의 여러 문제도 수교 이후 상호작용 과정에서 누적된 결과라는 의미다. 이제 막 20세 성인으로서의 발걸음을 떼는 한·중 관계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하나하나 준비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유달리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두 나라의 실질적인 협력을 위해선 상호 신뢰에 기초해 진심을 담은 말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쟁우(諍友)’가 될 필요가 있겠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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