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중·일 FTA,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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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제안했다. 한·중의 양자간 FTA를 강조해오던 중국으로선 이례적이다. 더욱 눈에 띄는 건 FTA 체결과 관련한 로드맵까지 서둘러 제시했다는 점이다. 올해 내로 타당성 공동 연구를 마치고, 내년부터 협상을 시작하자고 했다. “최대한 빨리 FTA를 체결하자”는 것이다. 우리로선 이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개방경제 국가인 우리로선 FTA는 주요한 생존전략이다. 또 중국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무역 및 투자 파트너다. 중국 경제가 침체되면 미국과 EU의 경제위기보다 더 큰 영향을 받는 구조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해야 할 정치·외교적 필요성도 상당히 크다. 한·중이든, 한·중·일이든 중국과의 FTA를 체결해야 할 이유다.

 문제는 어떤 전략과 프로그램으로 중국과의 협상에 임하느냐댜. FTA는 체결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급적 우리에게 유리한 결론을 끌어내야 하는 협상이라면 최대한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중국이 한·중·일 FTA를 제안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연히 미국 때문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대(對)아시아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고, 그 수단 중 하나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라는 게 중국의 인식이다. 이런 터에 최근 일본이 참여를 선언했다. 한·미 FTA까지 발효되면 중국은 동북아에서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국이 한·중 FTA 협상을 적극적으로 주창하기 시작한 것도 2007년 4월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이후부터였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중국과의 FTA를 서두를 이유는 없다고 본다. 전향적으로 검토하되, 그 시기를 중국의 스케줄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더 절실한 건 중국이다. 우리는 좀 더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향후 협상을 더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얻어내야 할 건 농수산물이다. 한·중이든, 한·중·일이든 동북아 FTA의 가장 큰 걸림돌은 농수산물이다. 예컨대 한·중 FTA 논의가 시작된 건 2004년부터였다. 민간 공동연구에 합의해 FTA 준비를 시작했지만, 논의가 전혀 진전되지 않은 건 농산물 때문이다. 2008년 한·중 양국 정상이 FTA의 적극 추진을 합의했지만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것 역시 같은 이유다.

 그만큼 국내 농산물이 입을 피해가 막대하다. 당연히 농어민의 반발을 정치적으로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농수산물 개방을 가급적 제한하면서, 우리에게 유리한 서비스·투자·지적재산권 분야의 개방을 최대한 많이 이끌어내는 게 협상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협상 준비 과정도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중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이유다. 한·미 FTA가 조속히 발효돼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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