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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 박힌 서정우 해병 모표에 ‘그날’은 살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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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해 11월 23일 연평 부대 피격 직후 휴가 가던 발길을 돌려 부대로 복귀하다 북한군 포탄에 맞아 사망한 서정우(당시 22세)하사. 이튿날 그가 숨진 자리 부근 소나무에 깊이 박힌 해병대 모표(모자에 붙이는 마크)가 발견됐다. 동료들은 “서 하사의 모표”라며 해병대 투혼의 상징으로 소나무와 모표를 보존하고 있다. [해병대 제공]
서정우 하사

‘무거워 벗은 헬멧, 가벼워진 나의 목숨’ ‘해병대가 있는 한 서북도서 이상 없다’ ‘도발하면 끝장낸다. 꿈도 꾸지 마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1주년(11월 23일)을 일주일 앞둔 지난 15일 찾아본 연평부대 곳곳에 붙어 있는 구호다. 이곳에서 만난 포7중대 본부 부대원들, 1년 전 북한의 도발에 목숨 걸고 맞섰던 장병들은 ‘언제라도 공격할 테면 하라’며 결기를 보였다.

 “‘한번만 더 도발해 봐라.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심정으로 매일 지내고 있습니다. 전역 신고를 하고 육지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이라도 북한이 또 도발한다면 복귀해 포를 쏘고 귀가하겠습니다.” 당시 1포 조종수였던 도기백(21) 병장 얘기다.

김정수 대위(左), 도기백 병장(右)

 피격 당시 중대장으로 대응사격을 지휘하고 지난 1월 해병대 사령부로 이동한 김정수(30) 대위도 이날 부대를 찾았다. 김 대위는 “다들 전역하고 막내들만 남아 있구나”라며 신상문(21) 병장을 힘껏 끌어안았다.

 “당시 지휘통제실에 있었는데 공룡 발자국 소리가 난다 싶어 밖으로 나왔더니 포탄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단 부하들을 대피시키고 자주포로 반격에 나섰습니다.”

 함께 싸운 전우들의 유대, 전투 의지는 더 강해졌다고 한다. 부상으로 국군수도병원에 후송됐던 8명의 해병 중 5명은 희망 부대로 옮겨주겠다는 제의에도 연평도로 돌아왔다. 당시 사타구니에 부상을 입었던 이한(21) 병장은 “해병대에 왔기 때문에 공격을 당한 게 아니라 해병대 여서 살아남았다”며 “덤으로 얻은 목숨,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년 전 피격 당시 북한의 포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K-9자주포 진지.

 당시 포격으로 화재가 났던 부대 주변 야산은 여전히 황폐한 모습이었다. 북한군의 포탄이 떨어진 포7중대의 포에는 1000여 개의 파편 자국이 남아 있었다. 헬기장 인근, 이발소 건물은 승전기념관으로 재단장 중이었다. 해병대 관계자는 “이발소 화장실에 포탄이 직접 떨어졌다”며 “안보교육을 위해 이곳을 보존키로 했다”고 했다. 건물 화장실 천장은 지름 1.5m가량의 구멍이 뚫려 있었고,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어 있었다. 부대 앞 언덕길 눈에 띈 소나무 한 그루. 휴가 길 부대로 복귀하다 포탄에 쓰러진 서정우 하사의 것으로 보이는 모표가 꽂혀 있었다.

 전력 증강과 함께 북한이 추가 도발해올 경우에 대비한 시설 보강작업도 마쳤다. 병영생활관(내무반) 유리창은 스카치 테이프를 ‘X’자로 붙여놨다. 해병대 관계자는 “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경우 유리창 파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K-9자주포가 배치된 포상 주변도 모래주머니와 콘크리트로 단장했다. 원래는 폐타이어로 싸여있었다. 북한의 도발 때는 타이어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라 대응 공격이 방해를 받았다.

연평도=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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