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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월요인터뷰] 조태열 외교부 개발협력대사 … 29일 개막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를 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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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태열 외교통상부 개발협력대사가 지난 1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사무실에서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개발이나 원조 관련 국제회의에 가면 한국의 발언권은 상상 외로 크다. ‘한국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나라(You can speak with authority)’란 말을 자주 듣는다.” 외교통상부 조태열(56) 개발협력대사의 말이다. 그는 전 지구적 경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공적개발원조(ODA)나 인도적 지원을 논의하는 자리에 ‘한국의 얼굴’로 참석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우리 정부의 공동 주관으로 11월 29일부터 2박3일간 열리는 부산세계개발원조총회(이하 부산 총회)를 앞두고 각 국의 어젠다를 조율해 온 조 대사를 지난 18일 만났다. 조 대사는 질문 하나에 10분 넘게 답을 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원조·개발 분야의 주도국이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잇는 가교로 인정받는 것에 비해 국내의 관심이 덜하다며 답답해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68)의 아들인 조 대사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핵심을 얘기했다. 아버지를 얘기할 땐 “유명인을 부모로 둔 자식들은 콤플렉스도 있다”며 웃었다.

-부산 총회란 무엇을 하는 모임인가. 알맹이가 뭔가.

 “개발 협력 분야에 있어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다. 기존 ‘원조가 과연 효과가 있는가’라는 기술적인 논의에서 ‘단순 원조로 그치는 게 아니라 원조가 개발의 씨앗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자리가 될 것이다. 개최 장소인 부산의 상징성도 있다. 부산은 1950~60년대 원조 물자의 하역항이었다. 이제는 원조 물자를 실어나르는 선적항이자 세계 5위의 무역항으로 바뀌었다. 회의에 참석하는 다른 나라 선진국 장관들도 부산의 의의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국제사회의 개발 의제를 주도한다는 게 와 닿지 않는다.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다. 국제적으로 개발 협력의 주요 프로세스는 3개다. 첫째, 유엔은 2015년을 목표로 새천년개발계획(MDG·Millennium Development Goals)을 추진하고 있다. 반기문 총장이 재선 후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부분이다. 둘째, 기존 개발 원조를 논의하는 핵심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에 지난해 가입했다. 끝으로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개발을 주요 의제로 포함시켰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프랑스·남아공과 함께 G20 개발그룹 공동의장직을 수행 중이다. 3개의 프로세스 모두 한국과 연관돼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때문에 개발 의제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한다는 얘기도 듣는다.”

 -2000년대 이후 선진국 일변도의 개발 논의에서 양상이 바뀌는 것 같다.

 “과거엔 선진국-수여국 간 양자 차원에서 원조 논의가 진행됐다. 그러나 최근엔 주체가 많아졌다.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국의 원조 규모가 커지고, 빌 게이츠 등 민간 영역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기업들도 영리활동과 병행해 자선사업을 벌인다. 이를 포괄할 수 있는 개발 논의가 필요하다. 부산 총회가 바로 그 자리가 될 것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외무고시 13회로 외교관이 된 조 대사는 지역통상국장, 통상교섭조정관을 지낸 통상전문가다. 올해 3월 주 스페인대사를 마치고 귀국해 6월부터 초대 개발협력대사가 된 그는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자부심을 가지고 베풀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선진국-개도국’ 간의 가교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조금 부끄럽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유엔 사무총장으로 부끄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때까지 선진국과 후진국이 대립하는 사안에서 우리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슈에 따라 선진국이나 후진국 뒤에 숨기도 했고…. 그러나 바뀌고 있다. 지난해 G20 정상회의에서 개발 어젠다를 입안해 적극적으로 추진한 게 우리다. 국내에선 ‘우리도 힘든데 어딜 도와주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극복해야 할 과제다. 국제사회에선 우리를 절대 개도국으로 보지 않는데, 우리 국민의 마음속엔 개도국 멘탤리티가 남아 있다. 그러면서 때론 선진국 대접을 받길 원한다. 국격에 맞는 국제사회의 행위자가 되기 위해선 필수적인 일이 원조 문제의 시야를 넓히는 일이다.”

 -ODA의 절대적인 규모도 작 다.

 “현재는 국민총소득(GNI)의 0.12%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2015년까지 이 비율을 0.25%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그렇게 되면 현재 12억 달러인 원조 규모가 30억 달러까지 늘어나게 된다. 지금 절대적인 원조 규모는 크지 않지만 많은 나라가 경제 위기를 이유로 지원 규모를 줄여간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도 규모를 늘려간다는 데 또 다른 의의가 있다. 원조 액수로 경쟁할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만이 갖고 있는 개발 경험이 있다. 선진국 수준으로 ODA의 규모나 질이 높아질 때까지 우리의 경험과 자산을 활용해야 한다.”

 -중국의 경우 원조를 매개로 한 지나친 자원 확보 움직임으로 ‘신제국주의’란 비판을 받기도 한다.

 “순전히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만 원조를 주는 국가는 없다. 우리도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아시아에 원조의 60%가 집중된다. 그러나 외교 정책과 개발원조 정책의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다. 특히 ‘경제 실익만 추구하려는 게 아니다’라는 신호를 줘야 한다. 자원부국에만 원조가 집중돼선 안 된다는 의미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에티오피아를 다녀온 게 좋은 예다. 에티오피아는 자원은 없지만 개발 의지가 강한 곳이다. 또 ‘겸손한 원조, 따뜻한 원조, 두 손으로 주는 원조’란 모토의 의미를 잘 살려야 한다. 민주화 경험도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조지훈 시인 막내아들 … “살뜰한 부정 표현은 안 하셨죠”

조 대사와 아버지의 추억

조지훈(1920~68년). 박두진·박목월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했다. 고려대 교수를 지내다 6·25 땐 종군작가로 활약했다.

조태열 개발협력대사의 선친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 선생이다. 1968년 마흔 여덟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우리 사회가 ‘마지막 선비가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던 멋과 기품을 지닌 지식인이었다. 조 대사에게 아버지 조지훈은 어떤 존재였을까.

 “중1 때 돌아가셨다. 3남1녀 가운데 막내여서 형들보다는 귀여워해주셨지만 살뜰하게 부정(父情)을 표현하진 않으셨다. 엄격한 유교풍 가정 환경이었다. ”

 -공직생활에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

 “그 반대다. 사람들은 내가 누구 아들이란 걸 알고는 기대와 호기심으로 대했다. 내게 아버지는 적어도 ‘빽’은 아니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가끔 가다 아부하고 타협하며 살아야 할 때도 있는데 그런 마음이 들라치면 아버지의 존재가 뒷덜미를 잡는 역할을 했다. ”

 -선친의 문재(文才)를 이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아버님께 누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초임 사무관 때부터 장·차관은 물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자주 맡아 썼다.”

글=권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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