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아이’ 나눠주는 사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5호 27면

유별스럽게 색색의 가을 단풍을 좋아하는 이가 있다. 산천이 모두가 웃는 모양 같다고 말한다. 붓소리 미술연구소를 운영하는 무천 유성남(49)씨의 생각이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그가 20년간 잘나가던 미술학원을 접고 생각한 것이 웃는 얼굴 작품이다. 그는 이를 소동(笑童)이라 부른다. 크기는 1㎝부터 50㎝까지 다양하다.

삶과 믿음

“마음 가는 대로 작업을 합니다.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작업을 시작하면 그냥 만들어집니다. 수작업으로 하는 만큼 같은 얼굴 모양은 거의 없어요. 비슷할 뿐입니다. 작업하는 시간은 즐겁습니다.”

이처럼 작품의 한 경지를 이루는 데는 집중이 필요하다. 일체의 상념과 번뇌가 없어지면 무상무아(無想無我)가 된다. 손만 움직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흙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작업이 끝난 것이다. 끝나고 나면 즐거운 마음이 든다. 그의 손끝에 웃는 소동의 모습이 만들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넓습니다. 그런 만큼 제가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보람됩니다. 웃는 얼굴은 보고만 있어도 좋습니다.”

그는 다른 작가가 만든 소동 작품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느낌으로 소동을 빚을 뿐이다. 작년 겨울에는 3개월 동안 크기가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 1만 개가 목표였다. 오는 손님들에게 유약을 바르지 않고 재벌구이한 소동을 한 주먹씩 쥐어 주기도 했다. 대략 50여 개다.
“처음에 작게 시작한 일이 엄청 커졌습니다.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웃는 얼굴, 웃는 마음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앉은 간이의자 옆을 보니 흙이 숙성되고 있었다. 이 흙은 그의 손길에 따라 다양한 작품으로 탄생되고 있다. 유약의 사용 유무에 따라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숙성시키고 있는 흙을 보고 있으면 흙과 동화되는 느낌이 듭니다. 어느 순간 감이 옵니다. 그때 작품을 만들지요. 제가 그리고 있는 동양화 작품이 마무리가 되지 않을 때도 소동에 관심을 가집니다. 소동 만드는 일을 잘한 것 같아요. 많은 손님이 선물용으로 쓰기도 하고 진열도 하며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그를 따라 2층 전시실로 향했다. 이럴 수가, 다양한 웃는 얼굴들이 진열돼 있었다. 실눈을 뜨고 누워서도 웃고, 앉아서도 웃는 얼굴이 전시실을 가득 메웠다. 새가 머리 위에 앉아 있어도 웃음은 여전했다. 하나같이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었다. 그의 말로는 아내의 웃음소리와 닮았다는 것이다.
“아내의 웃음소리가 엄청 큽니다. 호탕하게 웃습니다. 그 느낌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은 소동의 모습이 아내의 웃음과 닮았다고 말하기도 해요. 가정의 행복도 이 웃음 속에 있습니다. 웃음은 축복입니다. 매 순간 웃음을 생각한다면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봅니다.”

그의 느낌처럼 웃는 얼굴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축복하는 동안 치유가 이뤄지고 자신의 새로운 인생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고유한 영적 치유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다시 한번 웃고 있는 소동들을 쳐다보았다. 어쩜 이렇게도 환한 웃음일까. 실눈을 뜨고 웃어본다. 마음이 상쾌하다.


육관응 원불교신문 편집국장. 글쓰기사진을 통해 명상과 알아차림을 전하고 있다. 숲과 들을 접시에 담은 음식이야기, 자연 건강에 관심이 많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