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내성적 행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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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호 31면

안철수 서울대 교수는 공저 '나의 선택'에서 이렇게 썼다. “어려서부터 나는 내성적이고 발표력이 부족한 편이었다. 남 앞에 나서서 말도 잘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책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엔 “어린 시절부터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고치려고 애를 쓰기도 했고 크면서 조금씩 극복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구절도 나온다. 안 교수의 부친 안영모 부산 범천의원 원장 역시 안 교수에 대해 “내 아이니까 내가 잘 안다.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교사로부터 꾸중을 듣고 울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담임교사가 “좀 나무랐다. 이해해 달라”고 부친에게 전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시욕’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여의도 정치판이 안 교수의 내성적 행보에 흔들리고 있다. 1500억원 상당의 주식 기부를 밝혔던 지난 15일 오전, 안 교수는 경기도 수원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 출근하며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을 단지 행동으로 옮긴 것일 뿐”이라는 짧은 말만 남겼다. 그러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기자회견에 나섰을 대형 호재를 3분 만에 끝낸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 교수가 박원순 야권 후보를 어떻게 지원할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됐던 지난달 24일에도 그랬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박 후보 사무실을 찾아 편지 하나만 전한 뒤 역시 기자회견도 없이 사라졌다.

이런데도 안 교수에 대한 정치권의 구애는 끝이 없다. “안 교수도 (야권 통합에) 동참하기 바란다”(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나보다 열 배는 더 한나라당에 적합한 사람”(김문수 경기지사) 등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안철수 영입론을 주문처럼 외운다. 여론조사에선 정치입문 여부도 언급하지 않은 안 교수가 ‘대선 1등 주자’로 뜨고, ‘안철수 신당론’이 기성 정당을 위협한다.

왜 그럴까. 국민들이 기성 정치판에서 못 볼 것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회가 이종격투기장 같다”(이만섭 전 국회의장)는 말이 나올 만큼 우리 국회의 몸싸움과 폭력은 전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된 지 오래다. 툭 하면 막말과 욕설이다. 그렇게 싸우다가도 동료 감싸기나, 세비 인상 같은 밥그릇 챙기기에선 신속하게 단합 모드로 변신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놓고 여야의 격렬한 싸움판이 또다시 예고되면서 국민의 걱정과 분노는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안 교수의 ‘내성적 행보’를 놓고 게릴라 정치, 안개 정치, 신비주의라고 지적한다. “국민적 관심을 끊임없이 유지하려는 고도의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의구심과 비판을 담아서다. 부친인 안영모 원장에 따르면 안 교수는 IQ 145의 수재라고 한다. 그런 만큼 그가 치밀하게 전략적인 판단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정략보다는 성격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안철수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불든 기성 정치권에 떨어진 숙제는 여전하다. 끝없는 구태와 정쟁을 반복한다면 제2, 제3의 안철수가 등장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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